2015.01.15 21:19

소니 픽쳐스 사건과 러시아식 해법

1월2일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제재 행정명령은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전날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 터였다. 미국이 왜 저럴까. 러시아의 새로운 ‘남북관계’ 해법을 경계해 내린 조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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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승인 2015.01.15  02: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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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1월2일 휴가지에서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제재 행정명령은 아무리 봐도 오버다. 하필이면 그 전날 북한이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해 한국 내 분위기가 모처럼 고조될 때였다. 우방이라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했다. 더구나 올해는 박근혜 정부 3년차에 분단 70주년, 해방 70주년인 역사적인 해다. 남북관계에서 뭐라도 해야 할 때다.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미국이 왜 저럴까. 지난해 12월19일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태도를 바꿔, 북한을 소니 영화사 해킹의 진범으로 몰고 오바마 대통령이 비례적 대응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뭔가 미심쩍긴 했지만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다. 미국의 어깃장이 너무 노골적이라 그동안 미국의 대북제재에 전폭적 지지를 표명해온 정부·여당조차 의구심을 표할 정도다. “우리 처지에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라도 북한과 대화 채널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해서 북한이 여러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새누리당 대변인의 논평은 ‘당신들 얘기 안 믿는다’는 소리나 다를 바 없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사진: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사진 합성:시사IN 양한모</font></div>러시아가 5월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대독일전 승리기념일 행사에 북한 김정은 제1비서(왼쪽)를 초대했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도 같은 행사에 초청받아 남북 정상의 만남 여부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사진 합성:시사IN 양한모

러시아가 5월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대독일전 승리기념일 행사에 북한 김정은 제1비서(왼쪽)를 초대했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도 같은 행사에 초청받아 남북 정상의 만남 여부가 주목된다.

사실 미국이 올해 주한 미군에 사드 미사일(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강행하고 한·미·일 간 정보 공유 약정을 추진하고 있어서 자신들은 북한과 직접 대화를 추진할망정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데는 부정적이리라는 점은 능히 예상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속을 너무 빨리 보였다. 한국 내 반응이 심상찮다고 여겼던지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대북제재와 남북관계 개선은 무관하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으나 ‘병 주고 약준 꼴’밖에 되지 않았다.


소니 해킹 사태를 미국이 특별한 근거도 밝히지 않은 채 북한 소행으로 몰고 가는 모습(21쪽 기사 참조)은 국내의 전문가들에게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이 유화적으로 나오려고 할 때마다, 또는 남북 간에 뭐라도 하려고 하면 미국이 확인되지도 않는 정보를 들이대며 판을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최근에 든 여러 사례 중에 골라보자면,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의 빌미가 된 고농축 우라늄(HEU) 사건과 비슷하다. “그때도 뭔가 있는 것처럼 하면서 동북아 해빙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제네바 합의까지 깨버리더니, 2003년 말이 되자 북한이 가지고 있는 게 고농축 우라늄이 아니라 핵무장과는 무관한 저농축 우라늄이더라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넘어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남북의 최고 수뇌를 모스크바에 초청해 정상회담을 중재하는 그림을 연출하려고 한다.  

ⓒAP Photo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남북의 최고 수뇌를 모스크바에 초청해 정상회담을 중재하는 그림을 연출하려고 한다. 지난해 12월9일까지만 해도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소니픽처스 해킹에 북한은 관계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12월19일 별로 충분치도 않은 근거를 들이대며 북한을 진범으로 몰았다. 열흘 만에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극비 정보라도 입수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사이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라도 벌어졌나?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열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점검해볼 필요는 있다.


당장 12월17일 일본 <아사히 신문>의 보도가 눈에 띈다. ‘러시아가 2015년 5월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대독일전 승리기념일 행사에 북한 김정은 제1비서를 초대했으며 김정은 비서가 방문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한 것이다. 사흘 뒤인 12월20일 이번에는 <연합뉴스>가 박근혜 대통령도 모스크바 행사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12월17일이면 FBI가 소니 해킹 진범이 북한이라고 지목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비례적 대응을 선언하기 이틀 전이다. 미국으로서는 경천동지할 뉴스가 나온 셈이다. ‘오바마의 적’ 푸틴이 남북 양쪽의 최고 수뇌를 모스크바에 초청해 남북 정상회담을 중재하는 전무후무한 그림을 연출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2014년 12월19일 오바마 대통령은 소니픽처스 해킹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고 응징을 선언했다.  

ⓒAP Photo

2014년 12월19일 오바마 대통령은 소니픽처스 해킹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고 응징을 선언했다. 다시 주목해야 할 지난해 11월 최룡해의 ‘방러’


미국이 이 같은 중대 흐름을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알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사히 신문>과 <연합뉴스>에 뜰 정도면 미국 정보기관이 이미 이 사안을 추적해왔다고 봐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정은 제1비서를 오는 5월9일 행사에 초청한다는 러시아 측 계획이 북한에 전달된 시점은 지난해 11월17~24일 최룡해 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과 면담했을 때였다고 한다. 당시 최 비서의 방러는 그의 2013년 5월 방중에 비교됐다. 그의 중국 방문이 그 직전 북한을 방문한 이지마 이사오(일본 아베 총리의 특사로 알려진)의 방북 결과를 통고하고 중국이 6자회담과 북·미 대화를 중재해 북한의 국제무대 등장을 견인해줄 것을 의뢰하기 위함이었다면, 그의 방러는 중국 대신 러시아로 파트너가 교체된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최룡해의 방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따로 있다. 그의 방러 시점이 지난해 11월8일 이뤄진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방북 직후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클래퍼의 방북은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정책 구상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6자회담에 기댈 게 아니라 북·미 직접 대화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국가정보국 비밀 대북팀의 의견에 따라 그것을 타진하기 위한 방북이었던 것이다. 12월10일께 집중적으로 터져 나온 북·미 직접 대화론은 바로 그 연장선이다(<시사IN> 제381호 ‘냉전이여, 뜨거운 안녕’ 참조).


그런데 그 직후나 다름없는 11월17일 최룡해가 러시아로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방중 당시와 비교해보면 이번에는 이지마 이사오 대신 클래퍼 방북에서 드러난 미국 구상에 대한 협의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6자회담에 대해 러시아가 중재를 해보려고 움직이던 차였는데, 클래퍼 방북 때 드러난 미국의 구상은 6자회담이 아니라 1994년 제네바 회담의 연장선에서 제2의 제네바 합의를 도출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러시아 역시 6자회담이 아닌 새로운 러시아식 해법을 꺼내놓아야 할 판이 되었다. 최룡해가 갔을 때 푸틴이 5월 행사에 김정은 비서를 초청했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미국이 6자회담을 걷어치우고 미국식 해법을 내놓은 만큼 러시아도 그에 상응하는 러시아식 해법을 내놓은 것이고, 그것은 바로 러시아가 중재하는 모스크바 남북정상회담인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위키피디아</font></div>1970년 정상회담을 가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앞줄 왼쪽)와 빌리 슈토프 동독 수상(안경 낀 이).  

ⓒ위키피디아

1970년 정상회담을 가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앞줄 왼쪽)와 빌리 슈토프 동독 수상(안경 낀 이). 미국과 러시아는 반세기에 걸친 냉전 체제의 양대 거두였다. 충돌도 많았지만 분쟁의 관리와 해결 능력을 축적했다. 바로 이런 지점이 중국 외교가 따라갈 수 없는 대목이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중재한 경험이 있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 동·서독을 사실상 통일로 이끈 경험을 가지고 있다. 보통 콜 서독 총리를 동·서독 통일의 아버지라 부르지만 최근에는 콜 대신 고르바초프를 사실상 통독의 아버지라 부른다.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통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이전인 1970년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동방정책 배후에 브레즈네프 시절 옛 소련의 독일 정책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2012년 푸틴 재집권 이후 극동 진출이 강화되고, 특히 지난해 크림 사태 이후 한반도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러시아가 과거 독일 통일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흔적들이 속속 드러난다.


러시아의 해법은 1970년 동·서독 정상회담 모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난해 7월7일 북한이 뜬금없이 발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성명’(이하 정부 성명)이다. 정부 성명은 북한이 대외정책을 총괄해 발표할 때에만 사용하는 최상위 수준의 성명 형식이다. 북한이 이 형식을 사용한 것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의미 부여를 했다는 얘기인데, 당시 정부 성명은 전후 맥락 없이 발표된 후 잊히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 핵심 내용이 1월1일의 신년사에도 반복되는 등 대남정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핵심 골자는 남한이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 야망을 버리고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과 남은 연방연합제 방식의 통일 방안을 구체화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공존·공영·공리를 적극 도모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북한의 통일 방안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였던 데 비하면 앞에 비록 ‘연방’이란 말을 붙이기는 했지만 ‘연합제’ 방식의 통일 방안을 구체화하고 실현하자고 주장한 것은 중요한 변화였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 통일 이전 동독의 입장이었다는 점이다. 사상과 제도의 인정이란 결국 서독에게 국가 승인을 요구해온 동독 입장과 같은 것이고, 연합제 방식이란 것도 동독이 통일 방안으로 주장해온 국가연합안과 같은 것이다. 아데나워 이래 서독은, 서독이 독일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라며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 헌법이 북한까지 우리 영토로 규정하고 국가보안법이나 대법원 판례에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독은 1969년 선거에서 사민당이 승리하고 브란트가 총리가 되면서 정책 전환을 이루게 되었다. 국제적으로는 별개의 국가가 아니나 국내법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 체제를 인정하는 특수관계라 규정한 것이다.


바로 이 브란트의 정책 전환에 당시 소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고, 그 출발점은 독일과 소련 사이의 가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였다(20쪽 상자 기사). 즉 소련은 자국 경제의 절대적 부분을 차지하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위해 서독이 대형 파이프라인을 시베리아에서 서독까지 부설하는 프로젝트에 협력해주기를 바랐는데, 둘 사이 걸림돌이 바로 동독이었다. 소련은 동독의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동독을 건너뛰고 서독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소련이 서독과 정상회담을 하도록 동독에 압력을 넣었는데, 동독은 서독이 우리를 국가로 승인하지 않는데 어떻게 정상회담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독에 대고 동독을 국가로 승인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브란트 처지에서도 소련의 요구대로 두 국가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구 분단을 가져온 매국노라는 비판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국가 대 국가의 인정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었다. 1970년 3월19일 첫 정상회담을 위해 동독의 에르프르트로 떠나기에 앞서 그는 동독에 대해 ‘어제는 적, 오늘은 동반자, 내일은 하나의 독일 국민’이라고 규정했다. 이 말은 20년 후 실제로 독일 통일을 이뤄내는 역사적 명언이었지만, 당시에는 고뇌 어린 결단의 표현이었다. 소련과는 그해 5월 소련에서 서독까지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경제협정을 체결했다. 소련은 20년간 520억㎥의 천연가스를 독일에 공급하고, 그 대가로 연간 25억 마르크(약 1조2500억원·1970년 기준)를 챙길 수 있었다. 바로 이 천연가스 파이프 프로젝트가 동·서독 정상회담의 기폭제였던 것이다.


이 관점에서 지난해 7월7일 북한의 ‘정부 성명’ 전후 북·러 관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자. 러시아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한편으로 북한을 일정하게 견인해왔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4월의 트루트네프 부총리 방북을 전후로 북한이 옛 소련 시절의 루블화 결제로 돌아가고 100억 달러에 이르는 부채를 탕감해준 일, 6월에 나진항을 러시아 군함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한 일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10월에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이 방북해 북한 철도를 현대화(포베다 프로젝트)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연결하겠다고 발표한 일이다. 러시아는 이 프로젝트에 20년이라는 시간과 250억 달러의 투자가 든다고 했다. 이처럼 철도 현대화라는 북한의 희망 사항을 앞세웠지만 실은 가스와 원유 파이프라인이 철도와 같이 깔린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희망 사항 또한 함께 진행되는 것이다.


중국이나 미국은 말로만 상대를 위할 뿐 실제로는 자국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한계가 드러나고 국익 간에 충돌이 벌어진다. 반면 러시아는 상대방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고 자신의 요구를 내놓는다.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보듯 상대의 이익과 나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윈윈 게임’에 능숙하다. 이번에도 북한 철도의 현대화라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한 기반 위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좋아져야 한다는 식의 러시아 측 요구가 북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갈루슈카 장관이 서울에 왔을 때 우리 정부 측에 설명한 내용이기도 하다. 북한도 러시아가 제시한 막대한 선물을 위해서는 정부 성명을 발표하며 기존 통일 방안을 바꾸고, 싫어도 남북 고위급 회담 및 정상회담을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1970년대 동·서독 간의 1차 정상회담이 시베리아 가스 파이프 공사에서 연유한 것처럼 지금의 러시아를 매개로 한 남북관계에도 시베리아 파이프라인의 북한 통과 및 남한까지의 부설 프로젝트가 중심에서 작용하고 있다.


크림 사태 이후 러시아는 재정의 절대적 부분을 차지하는 석유·가스 수출에 제한을 받자 중국·인도·터키 등으로 수출을 다각화해왔다. 아시아 신흥시장 역시 주요 타깃인데, 세계 14위 무역 대국인 한국의 위치가 1970년대 서독과 유사하다. 현재의 러시아로서는 굉장히 큰 시장이고 이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과정에서 한반도 분단 상황은 거추장스럽다. 한마디로 가스와 석유 수출을 위한 ‘클린 한반도’가 러시아의 목표인 셈이다. 이를 위해 남북의 불필요한 긴장을 제거하고 공존 협력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한데, 그것이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에서 합의된 국가 대 국가의 인정, 나아가 국가연합 방식의 통일이라 할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꿈꿔온 북한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방 체제에 대한 인정은 국내법과 제도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소니 해킹 사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


북한이 올해 1월1일의 신년사에서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 회담도 할 수 있으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한 것은 사실상 러시아 측 구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남한이 대북 전단 살포 문제와 2월의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서 성의를 보이면 고위급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및 금강산 관광, 5·24 조치 해제 등을 논의하고, 그다음 5월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하자는 것이다.


한국을 자국 무기의 판매 시장 및 한·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만 묶어두기를 희망하는, 그러면서 자신들은 적당한 때 일본과 파트너가 되어 평양에 연락사무소 형태의 진출을 도모해온 미국 처지에서는 혼비백산할 일이다. 그래서 뭐라도 걸리면 그걸 빌미 삼아 판을 깨야 할 상황인데, 마침 소니픽처스 사건이 벌어졌으니 미국으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다. 미국이 일단 몰아붙이면 다혈질인 북한이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으로 대응할 것이고, 그러면 또다시 판이 정리되리라 주판알을 튕길 수 있는 상황이다. 그때는 전혀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므로 소니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묻혀버린다. 그랬다가 적당한 시점에 북·미 대화로 들어가면 된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계산법을 주변국들도 웬만큼 눈치 채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의 노림수에 응했지만,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가 생긴 지금도 과연 그럴까?


1970년 5월 소련과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체결한 서독의 브란트 총리가 자신의 측근이자 동방정책의 책사라고 불리는 에곤 바르를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 그동안 소련과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게 했다. 그러자 닉슨이 ‘협의를 위해 왔으면 여기 앉고, 통고를 위해 왔으면 당장 나가라’며 문전박대를 했다. 바르로부터 이 얘기를 들은 브란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가서 닉슨에게  전하라. 오늘의 독일은 어제의 독일이 아니다.’ 동맹의 이익과 국익이 충돌할 때 독일은 지도자들이 몸을 던져 국익을 지켰다. 우리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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