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7 17:30

냉전이여, 뜨거운 안녕!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하는 반면 미국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러시아의 북한 진출이 미국의 대북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독점 시대의 종언이다. 한반도 냉전체제 역시 결정적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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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승인 2015.01.03  02:14:33

미국과 쿠바 관계의 드라마틱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예외’라고 믿고 싶어 하는 이들이 꽤 되는 듯하다. 때마침 터진 소니픽처스에 대한 해킹 의혹을 두고 미국이 ‘테러 지원국’ 재지정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나 유엔 무대에 올라 있는 북한 인권 문제 등이 이런 예외론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미국이 쿠바와 국교 정상화 선언을 한 것은 ‘좋아서’가 아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스스로 밝혔듯이 지난 50년의 봉쇄정책이 실패했다는 판단에서였다. 쿠바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경제 제재를 가하며 모든 교류를 차단했어도 쿠바는 망하기는커녕 반미화하는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파고들면서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위도 깨진 지 오래다.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이 쿠바를 고립시키기보다 미국을 고립시켜온 셈이다.


북한과의 관계는 어떤가. 소니픽처스 사건 전까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북·미 직접 대화론이 힘을 얻어왔다. 전에는 주로 정부 밖의 전문가들이 북한 핵능력의 고도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탐색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지난 12월부터 본격화한 직접 대화론의 주창자들은 정부 밖의 전문가들이 아니다. 성 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비롯해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등 국무부의 대북정책 핵심 당국자들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  

ⓒAP Photo

특히 성 김 대표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주장한 것은 2014년 12월12일, 베이징에서 이틀에 걸쳐 중국 측과 6자회담 재개 방안을 토론하고 난 뒤였다. “북한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있다면 환영할 일”이라고 한 그의 발언은 그보다 이틀 앞선 12월10일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중앙일보> 인터뷰와 겹치며 파장을 낳았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 언론들은 “북한이 준비만 돼 있다면 (미국은) 진실되고 믿을 수 있는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라고 한 리퍼트 대사 발언을 즉각 보도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측에서 북·미 직접 대화론이 거듭 터져 나오는 이유에 대해 ‘6자회담은 미국이 전제조건을 너무 높여놓아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해온 북한이 이제 와서 이를 받아들일 리 없기 때문에 북·미 대화를 먼저 거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은 내막이 있다. 바로 2014년 11월8일에 있었던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 방북의 연장선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클래퍼 방북이 억류자 두 명을 데려오기 위한 인도적 목적에 국한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가정보국(DNI) 비밀 대북정책팀이 북한과 접촉을 모색하던 중 억류자 송환을 명분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2014년 2월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국가정보국이 미국 대북정책의 전면에 나섰다. 그 전에도 북한 핵 관련 정보는 국가정보국 소관이었다. 3차 핵실험 이후 북한 핵능력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이 관련 기관 보고서 등을 통해 밝혀지면서 국가정보국을 컨트롤타워로 대북정책 라인이 일원화됐다고 한다. 나머지 기관은 정보국의 시나리오에 따라 각기 역할을 담당한다. 대북 직접 접촉은 국가정보국이 맡고, 6자회담은 국무부, 인권 문제는 국무부와 의회 그리고 외곽단체가 나눠 맡는 식이다. 국가정보국은 인권이나 6자회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2013년 12월10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오바마 대통령(등 돌린 이)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왼쪽)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14년 12월17일 두 나라는 53년 만에 국교정상화를 선언했다.  

ⓒAP Photo

2013년 12월10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오바마 대통령(등 돌린 이)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왼쪽)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14년 12월17일 두 나라는 53년 만에 국교정상화를 선언했다. “북·미 관계, 견제도 하지만 ‘의존’도 한다” 


클래퍼 국장의 방북은 이 같은 흐름에 따라 미국이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생각이 있다는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게 바로 미국 국무부 고위 당국자들의 북·미 직접 대화론이다. 클래퍼가 인도적 차원으로 포장된 특사였다면 당시 논의를 바탕으로 공개적으로 북·미 직접 대화를 수행할 특사 방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후보자로 유력한 인물이 바로 성 김 대북정책 특별대표다. 이 때문에 자연스레 그의 평양 방문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2015년 1월 싱가포르 개최를 염두에 두고 준비 중인 북·미 1.5 트랙이 그 사전 조치가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북한에서는 외무성 관리들이 참석하고 미국에서는 스티븐 보즈워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조지프 디트라니 국가정보국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 등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탐색적 대화를 주창해온 인사들로 미국이 북한과 돌파구를 열 때 앞장서는 인물들이다.


앞으로 북·미 관계는 어떤 단계를 밟아나갈까? 미국의 이번 대쿠바 정책 변화는 중남미에서 냉전의 해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브라질 주요 언론들이 미국과 쿠바의 역사적 화해가 발표된 순간 내건 타이틀이 ‘냉전이여 안녕’이었다.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은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위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냉전은 1990년대 초 해체됐다고 알려졌지만, 중남미에서는 그로부터 20년 넘게 더 유지됐던 것이다. 서유럽에서 소련의 붕괴는 압제에 있던 동유럽의 해방을 의미했고, 동유럽의 해방이 유럽의 해빙을 불러왔다. 그러나 소련의 지원을 받았던 쿠바의 상황은 달랐다. 해방보다는 체제 위기로 다가왔다. 미국의 봉쇄 역시 계속됐다.


한반도의 경우는 어떨까. 1990년대 초 유럽의 해빙 바람이 잠시 스치는 듯했던 한반도 역시 냉전의 터널로 다시 굴러떨어져 20년을 보냈다. 북한 상황이 쿠바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변수가 더해진다. 바로 미국이다(53쪽 기사 참조). 특히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이제는 미국의 레토릭(수사학) 너머에 있는 진정한 의도가 무엇일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전략적 인내’를 핑계로 북한 핵능력 증강을 방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10일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평화학술회의에서 베이징 대학의 한화 교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능력 등을 볼 때 북한 핵의 첫 희생자는 중국이 될 것이라고 중국은 생각한다”라는 미묘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미국이 과연 북한 비핵화에 나설 동기가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의 표현으로 들렸다. 국내의 한 전문가는 ‘북한과 미국 관계는 서로 견제하며 의존하는 관계’라고 정의했다. “지난 20년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북한 핵에 대한 반응의 역사에 불과하며, 북한 핵은 동북아에서 미국이 가진 가장 큰 전략적 자산”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 그리고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따른 해군력 재배치 역시 북한 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미국은 북한 핵을 근거로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통제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한다. 결국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핵이 없는 북한이 아니라 핵이 있는 북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할 뿐 사실은 아닌 것 같다는 반응들이 지난 20년간 미국의 행태를 지켜봐온 많은 이들 사이에서 최근 나오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94년 로버트 갈루치 북핵 대사(왼쪽)와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제네바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4년 로버트 갈루치 북핵 대사(왼쪽)와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제네바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2015년 대북전략 1단계는 제네바 합의 ‘시즌2’ 


북한의 핵능력은 자꾸 고도화하는 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의심이 커지다 보니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북한 진출 움직임은 이제 미국의 봉쇄가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미국 독점 시대의 종언이다. 따라서 중국의 중남미 진출로 남미에 대한 미국의 독점이 깨지자 어쩔 수 없이 쿠바 정책을 바꿨듯이, 러시아의 북한 진출이 미국의 대북 정책 또한 바꿀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쿠바 수교로 중남미 냉전이 해체되기 시작한 것처럼 한반도 냉전체제 역시 결정적인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해빙은 ‘북핵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 성격’ 탓에 쿠바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될 전망이다.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 한·일에 대한 통제와 중·러에 대한 견제라는 기존 동북아 전략 틀을 유지하면서, 북한 핵 관리에 들어가려 할 것이다. 북한에 직접 대화를 촉구하는 한편, 인권 문제 등 분란의 소재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9년 9·19 공동성명을 준비하는 한편으로, 마카오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제재를 병행하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북한과의 대화 국면에서도 필요에 따라 상황을 ‘업앤드다운(Up&Down)’하며 초점을 흐리기 위한 전형적인 ‘투 트랙(Two Track) 전술’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Reuters</font></div>미국 위성 이코노스가 촬영한 영변 핵단지의 위성사진.  

ⓒReuters

미국 위성 이코노스가 촬영한 영변 핵단지의 위성사진. 자신들은 북한과 대화하면서 끊임없이 북한의 위험성과 인권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한국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데 주저하게 만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을 미국의 무기 판매 시장으로 계속 묶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태도도 매우 복잡하다. 미국은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어 동북아에서 미국의 대행 역할을 해주길 원한다. 그러나 일본이 핵무장을 통해 미국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일본의 핵무장은 곧 미국의 통제권을 벗어난다는 의미다. 주일 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데 일본은 북한 핵을 견제한다는 빌미로 자신들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핵우산의 신뢰성을 높여줄 테니 핵무장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일본에 보내는 중이다. 


핵보유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월 미국의 공화·민주 양당 전략가들이 중국과 북한을 미국의 확장 억지 전략의 대상으로 새삼스레 다시 규정하는 초당파 보고서를 발표한 것 또한 견제구의 일환이다. 지난 연말에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승리한 것을 두고 워싱턴 분위기가 냉랭해진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아베가 헌법 개정으로까지 치달으려고 하는 것을 지켜보는 미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미국이 이처럼 복잡한 동북아 전략을 유지하며 당면한 북한 핵을 관리하기 위해 채택한 모델이 바로 1994년의 북·미 제네바 합의다. 당시 제네바 합의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기존 핵무기(과거 핵)는 건드리지 않은 채 현재와 미래의 핵능력을 증강하지 못하도록 동결시켰다. 당시 김영삼 정부에서 협상에 관여했던 당국자들은 미국이 북한의 과거 핵을 용인하고 넘어가려는 것에 대해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현재와 미래 핵을 동결함으로써 관리는 하되 과거 핵의 불씨를 살려둠으로써, 미국의 기존 동북아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절충식 해법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동결에 확산 방지가 추가될 뿐이다. 그렇다 해도 북한은 그동안 축적된 핵 무장력을 보유한 셈이니 이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핵우산을 펼치며 주한·주일 미군을 유지하고 아시아 병력 재배치 등의 전략을 추진해나갈 수 있다. 즉 과거 핵을 묻고 현재와 미래 핵의 동결과 확산 방지를 기조로 하는 ‘제네바 합의 시즌 2’가 2015년 대북 전략의 1단계인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평양 조선중앙통신</font></div>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을 연결하는 철도 선로가 5년간의 개·보수를 거쳐 2013년 9월 개통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을 연결하는 철도 선로가 5년간의 개·보수를 거쳐 2013년 9월 개통했다. 내용적으로는 한발 더 나아갈 수도 있다. 1994년의 합의는 북한이 3년 안에 무너질 것을 전제로 했다. 경수로 제공을 비롯한 미국 측 약속은 사실상 공수표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렵다. 북한이 두 번 속을 리 없다. 러시아가 북한의 철도 현대화와 지하자원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는 미국도 북한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1994년 당시 핵동결 다음 순서로 약속됐던 연락사무소 상호 교환까지는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지점이 2014년 8월16일 시드니 사일러 방북 때 촉발된 바 있는 북·일 관계와 북·미 관계의 동시 진행 패턴과 맞물린다(<시사IN> 제366호 ‘그때 그 남자들 20년 만에 만난 사연’ 기사 참조). 현재 북·일 간 납북자 문제 협의는 일본의 대북 선투자 문제 때문에 벽에 부딪혀 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북·미 관계가 풀려야 한다. 일본이 미국 국방부 채널을 통해 북·미 관계를 적극 주선하고 있는 이유다. 앞으로 북·미 직접 대화가 일정한 성과를 내는 것에 맞춰 일본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락사무소 내지는 외교대표부 교환에 나설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의 북한 진출 가시화는 미국 자본의 평양 진출을 촉발할 것이다. 봉쇄정책 아래서는 미국 자본의 움직임이 없었지만, 봉쇄가 해제되면 움직임이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자본이 북한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도 있으나 1994년 제네바 합의 직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움직임을 보면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일본이 북한과 수교 협상에 들어가면 수교 배상금을 둘러싸고 자본 간 경쟁이 치열해진다. 당연히 미국 자본 역시 이것을 노린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일 양국은 수교 배상금을 가지고 공동으로 북한에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한 바 있다. 미국은 이를 떨떠름하게 여겼다. 따라서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한국의 대북 접근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현재 미얀마(버마)와 더불어 아시아의 마지막 저임금 기지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막대한 인프라 투자 수요가 있다. 지금 싱가포르나 홍콩 등에는 북한을 마지막 투자처로 보고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서방 자본이 많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북한이 군사 영토였다면 앞으로의 북한은 경제 영토이다.


북한이 핵을 동결했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핵능력을 축적해놓은 상태인데, 그런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핵·경제 병진전략’은 북한 핵의 지위를 끌어올렸다. 과거에 협상카드 수준이었다면 이제 북한식 시스템을 구동하기 위한 중심축의 위상이다. 핵이 있어야 국방비를 줄여 경공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상당 기간 핵을 끌고 가려 할 것이다. 미국 역시 핵이 없는 북한보다 핵이 있는 북한이 전략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겉으로는 비핵화 압력을 계속 가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두 번째 단계로의 이행을 결단해야 할 것이다.


제3의 길… 핵을 가진 북한을 ‘친미화’하라 


연락사무소는 수교를 전제로 한다.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 북핵 해법에 대해 그동안 우크라이나 모델과 미·소 핵군축 모델이 주로 거론돼왔다. 우크라이나 모델은 핵 포기 대신 경제 지원을 하는 것이고, 미·소 핵군축 모델은 북한의 핵과 주한 미군의 핵을 동시에 감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3의 길이 있을 수 있다. 바로 핵을 가진 북한을 미국이 끌어안아버리는 것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직후 워싱턴 일각에서 ‘핵을 가진 북한을 친미화하라’는 주장이 흘러나온 바 있다. 북한이 핵을 소유한 게 문제가 아니라 핵을 가진 북한이 반미이기 때문에 문제이므로, 북한을 친미로 돌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오바마가 쿠바 정책을 하루아침에 전환하는 모습을 보며 워싱턴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 사이에 이 주장이 다시 나온다. 이른바 쿠바 모델의 북한 적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에 대한 미국의 50년 정책 실패를 자인하며 ‘사회주의·1인 독재·형제 세습’을 온존한 채 쿠바를 끌어안아버린 것처럼, 북한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으로서는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을 잘 부각하기 위해 그 전에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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