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4 12:05

북일관계는 적극 밀고, 남북관계는 방해하는, 미국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

어제 힘들게 기사를 마감했습니다. 강석주의 한가한 유럽 순방에 대한 기사입니다. 명실상부 북한외교의 총사령탑이자 실세로 일컬어지는 인물이 기껏해야 당대 당 외교니, 외교공관 설치니 하는 한량한 목적으로 장기 외유에 나선 이유가 뭘까. 그의 장기 외유와 지난 8월16일 있었던 미국 당국자들의 극비 방북, 그리고 15년 만에 유엔 총회 참석을 예고한 리수용 외상의 움직임 등의 관계를 탐색하는 기사였지요.(궁금하시면, 오배건.ㅎ)

자연히 북일관계가 언급되고 미국이 언제부터 일본의 뒤에서 북일 접촉의 보고 및 협의채널로 작용해왔나 하는 대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됐지요.


지난번에 관련 기사를 한번 쓴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북일 접촉은 장성택 사망후인 지난해 말 북한 보위부 측의 요청으로 일본 내각관방실 납치문제대책본부와 채널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내각 관방실은 미일안보의 논의 채널인 미국 국방성과 그 내용을 공유하며 협의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 국무부가 대북 정책에서 힘을 잃었고 아울러 국무부만 쳐다보고 있는 한국 중국 등 6자회담파의 동력이 상실됐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럼 지난해 말 이전에는 어땠는가. 예를 들어 지난해 5월 이지마 이사오 방북 당시는 어땠나. 당시로서는 그 이전의 실태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추론할만한 근거가 확보된 게 없었지요.

그런데 얼마전 중요한 얘길 들었습니다. 일본이 대북접촉을 본격화한 계기가 된 게 바로 민주당 노다 정권 시절인 2012년 7월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평양에서 김정은 비서를 면담한 사건이었습니다. 그이후 북일 적십자회담, 과장급 회담이 열리고 현재의 북일접촉의 틀을 만들었다는 2012년 11월의 몽골 울란바토르 국장급 회담,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난해 이지마 방북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들은 얘기는 바로 2012년 7월의 후지모토 방북 자체가 미국 국방성팀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뿐 아니라 그해 11월의 울란바토르 국장급 회담에도 미국팀이 주선 내지 깊이 관여했다는군요. 아예 미국팀이 현장에 가 있었다는군요. 순간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지요.( 어떤 분들은 제가 이런저런 얘기를 기사에서 많이 언급하니까 뭔가 많이 알 거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 역시 늘 한걸음 한걸음 더듬어서 찾아 나갈 뿐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정황을 다시 따져봤지요. 무엇보다 2012년 2.29 합의가 북한의 4월 장거리 로켓 발사로 박살이 났지요. 2.29 합의야 말로 미 국무부 팀이 오랜만에 맘 먹고 뭔가 해보려 무리를 한 거였는데 말입니다. 로켓 발사를 막으려 국무부에 오래 몸담았던 국가정보국(DNI) 디트러니 비확산센터 소장이 4월에 극비 방북해 만류하기까지 했으나 북한은 아랑곳 없이 감행, 다 바보로 만들어버렸죠. 그뒤 국무부는 2.29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 국무부 대북라인의 한계가 드러나 버린 셈이지요.


그 타이밍을 국방부가 놓치지 않고 칼을 빼든 겁니다. 바로 일본 카드이지요. 일본의 막대한 수교자금을 미끼로 북한을 끌어내겠다는 것. 그래서 그뒤 앞의 얘기대로 쭉 이어지다 장성택 처형으로 한차례 위기에 빠졌다가 작년말 재봉합되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지요.


제가 왜 새삼스럽게 이 얘기를 하느냐.

박근혜 정부 들어 대북정책과 연동된 미국의 우리쪽에 대한 일련의 움직임에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참 많았기 때문입니다. 첫째, 3,4월의 한미군사훈련의 강도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강도로 계속 이어지고 있지요. 그리고 8월에 한번 더, 이건 전에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남북대화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3.4월과 8월 두차례나 대화불능 에어리어가 아예 설정되다시피 돼 버린 겁니다. 사실 이런 구도에서는 남북대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계획은 한미연합사가 세우겠지만 미 국방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리라는 건 불보듯 뻔합니다.


그런데 그 미국방성이 이미 재작년 7월, 즉 박근혜 정권 등장하기 전부터 우리 몰래 일본의 대북접근을 뒤에서 추동해왔다는 사실. 이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본은 대화하라며 등 떠밀고 한국은 대화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셈인 건가요? ㅎ 저는 우리의 혈맹인 미국이 정말 그런 의도로 그렇게 했을 리는 없다고 믿고 싶네요. ㅎ 그리고 우리 정부나 군부 역시 그렇게 바보들은 아니라고 믿고 싶네요.


그런데 또 웃기는 게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 국무부와 중국을 연결하는 한미중 전략공조로 북한을 압박해 결국 북한이 손들고 나오게 하겠다 기염을 토해왔지요. 미 국무부의 2.29트라우마, 이해는 되지만 6자회담 문턱을 엄청 높혀 사실상 그동안 아무것도 된 게 없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한쪽에선 일본이 수교배상금 입금통장과 도장까지 다 만들어 놨다고하며북일간 채널로 하자고 덤비는데 자기들한테 별이득도 없고 까다롭기만한 6자회담 나오고 싶을까요, 그리고 북한이 볼 때 일본 뒤에도 미국이 있다는 거 뻔히 아는데. 쇼하고 있네라고 생각하겠죠. 그래서 그동안 시간만 죽여 왔지요. 이게 그동안 한국과 중국의 발목을 잡기위한 고도의 트릭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의심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하는 것 참 어쩔 수가 없네요.


참고로 워싱턴 전문가중 누구도 비핵화, 즉 북한의 핵포기가 가능할거라고 여기는 사람 하나도 없답니다. 그런데도 지난해 4월 처음 한국을 방문한 캐리 국무장관은 북핵문제 해법의 목표를 북한 비핵화, 즉 북한의 핵포기라고 아예 못을 박아버렸지요. 그리고 나서는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과 대북정책을 논의하려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정작 주무장관이었으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정을 핑계 삼아 자리를 비우고 러시아로 토끼다시피 사라져 버렸지요. 왜 그랬을까요? 당시 기사에도 언급했지만 박이 방미한 바로 그시간 북한이 이지마에게 방북 초청장을 보냈더군요. 미국이 몰랐을까요?


물론 우리의 현명한 정부는 이런 사실들을 이미 다알고 감안해서 현명하게 잘해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이 이렇게 서로 한몸이 되어 북치고 장구치며 북한의 문을 열려 뒷구멍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판인데도 우리 통일부는 왜, 어째서, 뭘 믿고, 여전히, 북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5.24 조치 해제는 없다 큰소리 치고 있는 걸까요? 뭔가 깊은 뜻이 없다면 이 판국에 저렇게 의연한 모습을 여전히 견지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믿고 싶네요. 리얼리? 어찌하다 보니 나꼼수 버전 비스므리 됐네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혈압 오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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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4 12:01

한국의 지정학적 지위가 급상승한 이유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나 스카보로초 섬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분쟁 정책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베트남과 분쟁을 야기한 데도 이유가 있었다. 중국은 미국과의 신냉전에 대비해 창과 방패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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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승인 2014.08.16  12:38:34

동북아를 보는 미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중국도 3월 중순께 눈치를 챘다고 한다. 그전만 해도 중국의 강경파 군부 인사들은 미국이 센카쿠나 스카보로초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장담해왔다. 그러다 미국이 대결 불사의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과 필리핀에 대한 영유권 분쟁 정책을 계속 펼 경우 미군과 충돌할 가능성도 대두했다. 


센카쿠나 스카보로초 섬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분쟁 정책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중국 대미 정책의 핵심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몰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산업시설 등이 위치한 연해부로부터 미군을 되도록 멀리 떼어놓기 위한 ‘접근 저지 및 영역 거부(A2/AD)’ 전략과 더불어, ‘통합과 헤지’를 기본으로 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거꾸로 활용하는 분쟁 유도 전략을 구사해온 이유다. 즉,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끌어들이고(통합), 한국·일본·필리핀 등과의 동맹 및 준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헤지)하는 게 미국의 기본 전략이라면, 중국은 일본·필리핀 등과의 영유권 분쟁을 통해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과의 경협을 택할 것인지, 동맹국에 대한 의리를 택할 것인지 선택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당분간 방향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5월 초쯤 중·일 간 교섭이 본격화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대신 베트남이 유탄을 맞았다. 중국 내부의 경제 불만, 최근의 저우융캉 사태 같은 정치적 불안감 때문에 외부와의 적당한 분란이 필요하다. 5월 초 파라셀 군도에 느닷없이 석유 굴삭작업을 시작해 베트남과 분쟁을 야기한 것 역시 의도적인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지난 7월11일 해군 부산기지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 갑판에 전폭기 등이 줄지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11일 해군 부산기지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 갑판에 전폭기 등이 줄지어 있다. 이 와중에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난 7월3일 한국을 방문했다. 어떤 맥락일까? 앞으로 있을지 모를 미국과의 신냉전에 대비해 중국은 지금 창과 방패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올 6월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력 잠수함 서너 대가 이미 남중국해를 비롯한 잠수함 기지에 배치돼 있다. 이들 원자력 잠수함에는 사정거리 7400㎞에 이르는 핵미사일(SLBM)이 장착돼 있다. 미국이 만약 중국을 핵으로 선제공격하려 할 경우, 이들 원자력 잠수함이 남중국해를 벗어나 미국 본토에 접근해 위협함으로써 미국의 공격을 차단하게 된다.


세 나라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탐내건만…


원자력 잠수함이 중국의 창이라면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에 대항해 2016년부터 중국 연안에 배치하려는 러시아제 최신 방공미사일 S-400은 방패에 해당한다. 중국의 미사일 기지를 미국의 오하이오급 잠수함 4대가 순항미사일로 공격하면 속수무책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양상이었다. S-400은 바로 이 순항미사일 공격을 막아준다는 점에서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무기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한국의 미 공군기지에서 베이징을 겨냥해 발사하는 미사일이나, 미국 잠수함이 한국 서해로 접근해 근접 거리에서 발사할 경우에는 방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즉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간의 전쟁 양상을 뒤바꾸는 사활적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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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4 11:59

그의 ‘극비 방중’에 얽힌 세 나라의 속셈


후쿠다 전 일본 총리가 시진핑 주석을 만난 건 사건이다. 기세등등하던 아베 권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중·일 ‘외교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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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승인 2014.08.18  11:03:47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7월27일 베이징을 극비리에 방문해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났다. 후쿠다는 이미 올 상반기에 일본 정국의 막후 인물로 떠올라 있었다. 자민당 내 반(反)아베 세력의 정점이기도 하면서, ‘외교 총붕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인 아베 정권을 측면 지원해 일본 외교를 구해야 할 모순된 사명을 짊어진 인물이다. 상반기에 잠깐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가 잠행을 거듭하다 드디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국가 주석 취임 후 일본 측 인사를 일절 만나지 않던 시진핑 주석을 지난해 4월 하이난 섬에서 열린 아시아 다보스 포럼에 이어 또다시 만났으니 일본으로서는 ‘사건’이다.


후쿠다의 부상으로 기세등등하던 아베의 권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도 의문이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후쿠다 관방장관 밑에서 아베가 부장관을 맡았다. 둘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견해도 달랐다. 납북자 문제를 둘러싸고 후쿠다가 관방장관에서 물러나기까지 했다. 서로 악연이다. 미국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하지만, 아베로서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인물이다. 측근들에게 특명을 내려보기도 했다. 야치 쇼타로 초대 국가안전보장회의(일본판 NSC) 사무국장이 첫 주인공이었다. 아베 1차 내각 때 아베의 방중을 성사시켜 대중국 외교의 마지막 보루라 여겨졌던 인물로, 기대가 컸지만 불발에 그쳤다. 극비 방중을 통해 다이빙궈와 왕이를 접촉했으나 견해차만 확인했다. 중국 측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영유권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 ‘중국과 일본의 공선(公船)이 각각 센카쿠로부터 12㎞ 이내에 접근하지 말 것’을 중·일 정상회담 조건으로 내세웠다. ‘중국이 센카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게 일본 측이 제시한 안이었으나, 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다. 야치 다음에는 사이키 아키타카 현 외무성 사무차관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후쿠다에게 밀렸다.


자민당 내 ‘반 아베 세력’ 형성


아베가 견원지간이라 할 후쿠다 전 총리에게 기대 중·일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면, 그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자민당 내에 기존 주류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反)아베 포위망이 광범위하게 구축돼 있다. 게다가 지난 7월1일 집단자위권 해석 강행으로 아베의 인기는 뚝 떨어졌다. 체감 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아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환상도 많이 사라졌다. 소비세 인상 효과가 여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면 소비 위축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지구의를 보듯 전 세계를 대상으로 외교를 펼친다며 ‘지구의 부감 외교’ 운운했지만, 정작 가까운 한국·중국과의 갈등으로 ‘외교 총붕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스스로 해결할 능력조차 없어, 반대 진영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다. 일본의 한 언론은 아베가 지난 4월 당내 온건파 성향 원로에게 중·일 정상회담의 환경 조성에 나서줄 것을 당부하는 모습을 두고 ‘추태를 보였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우여곡절만 아니었다면, 정권의 위기가 더욱 빨랐을지도 모른다. 임기 첫해 아베와 측근들의 독주에 침묵해오던 자민당 내 주류 온건파가 꿈틀대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 2월1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였다.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에 대해 “정부의 최고 책임자는 내각 법제국장이 아니라 바로 나다”라는 둥 아베의 오만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그동안 아베의 인기에 눌리고 당 지도부에 찍히면 차기 선거를 보장받을 수 없는 소선거구제의 맹점으로 인해 침묵해왔던 당내 리버럴 세력의 불만이 드디어 폭발했다. 3월17일에는 그동안 총리 관저의 의향대로 운영되던 자민당 총무회가 9년 만에 처음으로 열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면 해석 변경이 아니라 헌법을 개정하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고가 마코토 등 각 파벌의 원로들이 막후에 등장했다. ‘경제 중시, 경무장’을 앞세우고 외교를 중시하는 게 한·일 의원연맹(의련)이나 중·일 의련 등에 소속된 이들 주류 온건파의 노선이다. 아베가 밀어붙이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해석 변경이 근린 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원흉으로 떠오르자, 각 파벌 단위로 연구회를 조직해 4월부터는 본격 대응에 나설 참이었다. 자민당 최고위 간부가 후쿠다 총리를 찾아가 “한국·중국과 관계가 이대로 계속되면 일본 경제에 심각한 영향이 온다”라며 측면 지원을 당부한 게 3월 하순. 후쿠다의 움직임 역시 파벌 원로들이 진행한 일련의 막후 활동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오바마 발언 이용해 자위권 해석 변경 밀어붙여


미·일 관계가 나빠지면서, 미국이 더 이상 아베 정권의 뒷배를 봐주지 않는다는 점 역시 중요한 신호였다.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결행한 직후, 주일 미국 대사관이 내놓은 첫 반응은 ‘실망했다’였다. 그런데 국무부의 원래 표현은 이보다 훨씬 심한 것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그 뒤로도 아베 측근들의 부적절한 발언들로 올해 초 이미 미·일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친미 보수 노선을 견지해온 자민당 온건 세력에게 반아베 포위망 구축의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 셈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바로 4월23~25일 진행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이다. 4월25일의 미·일 공동성명에서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이라고 밝힌 것은 예상치 못한 사태 전개였다. 이로써 유사시 미군이 센카쿠 사태에 개입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졌고, 아베와 일본 우파들로서는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을 밀어붙일 절호의 기회로 떠올랐다. 즉 “미군이 도와주려 해도 일본 자위대가 동맹국을 위해 피 흘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다”라는 식으로 자위권 해석 변경의 정당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함으로써 7월1일 각의 결정까지 밀어붙이게 된 것이다.


사실 공동성명 내용이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 약속이라기보다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하다는 점은 전문가들 사이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일 안보조약 제5조에는 나토 조약 제5조에 없는 ‘각국이 헌법상의 규정과 절차에 따른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 즉 센카쿠가 안보조약 대상이지만 이에 대한 개입은 미국의 경우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부시 정권의 두 차례 전쟁으로 피폐해진 미국 사회가 무인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일을 허용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오바마의 발언은 실제로는 중국에 대해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지 말라는 구두 경고의 의미가 강한 것이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2014년 필리핀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환영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10년간 기지 사용 및 미군의 순환배치와 관련된 협정을 필리핀과 맺었다.  

ⓒAP Photo

2014년 필리핀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환영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10년간 기지 사용 및 미군의 순환배치와 관련된 협정을 필리핀과 맺었다. 왜 이런 경고가 필요했는지는 당시의 복잡한 국제 정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은 원래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의 일환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치중됐던 미군 병력을 아시아로 재배치하겠다는 것이 바로 회귀(Pivot)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드러난 대상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와 필리핀이다. 미국 아·태 전략의 새로운 거점인 인도양 한복판의 영국령 디에고가르시아 섬에 있는 해·공군 기지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인도, 오른쪽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필리핀을 연결한다. 이를 통해 중국이 진주목걸이 형상으로 인도를 포위하면서 동중국 쪽의 제1열도선과 연결하려는 전략을 분쇄하겠다는 것이 바로 아시아 회귀전략의 핵심이다(위 그림 참조).


2011년 1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스트레일리아 의회 연설에서 1차로 오키나와 주둔 미국 해병대 2500명을 오스트레일리아 다윈 기지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그다음 목표가 1992년 미군이 철수한 필리핀에 재주둔해 남중국해의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으로 오바마가 2012년 10월 필리핀을 방문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다가 지난 4월28일 비로소 방문해 향후 10년간의 기지 사용 및 미군의 순환배치 관련 협정을 맺었다.


그런데 그사이 국제 정세의 중요한 변화들이 발생했다. 먼저 미·중 관계의 악화다. 지난해 6월 캘리포니아 미·중 정상회담 때만 해도 중국의 경제 협조와 미국의 신형대국 관계 수용이라는 빅딜이 성립되는 듯했다. 당시 중국은 경제 협력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가로 중국 함선이 제1열도선을 벗어나 서태평양에 진출하는 것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곧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전략을 견제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양적완화 축소의 여파 때문에 중국의 협조가 절실했던 오바마 정부가 고심 끝에 지난해 11월20일 수전 라이스 보좌관의 연설을 통해 중국 측 요구에 긍정적 신호를 보냈는데, 그 3일 뒤에 중국은 한술 더 떠서 방공식별구역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당시에는 미국이 비교적 시원스레 대응했지만 국방부를 중심으로 부글부글 끓었을 것은 당연하다. 연말께부터 미국 경제가 호전되어 더 이상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고, 올 2월 크림반도 사태까지 겹쳐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생겼다.


“좋은 아베, 나쁜 아베, 불확실한 아베가 있다”


“오바마의 방일로 아베는 모든 것을 얻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만 입었다.” 이런 평가가 나온 4월 미·일 정상회담은 아베에게는 행운이었지만, 과연 그 행운이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이었다. 워싱턴 정가의 반응이 보여주듯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의 일본 방문의 핵심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돌파구를 여는 것이었으나,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국빈으로 초대해놓고 망신만 준 셈이다. 오바마의 심기가 좋을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아베 정권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미국 곳곳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지고, 국무부와 백악관 관리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났으며, 앞으로는 외교안보 당국자까지 만남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58~59쪽 기사 참조). 미국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유엔 인권기관들 역시 최근 총출동해 아베 정권을 난타하고 있다. 미국 내 지일파 인사들의 경고 발언을 보면, 우연한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일본 우파 잡지 <보이스(Voice)> 8월호에 실린 글렌 S. 후쿠시마라는 사람의 글이 대표적이다. 미국 통상대표부(USTR) 일본 담당으로 오랫동안 근무했고, 주일 미국 상공회의소 대표 등을 역임한 그의 글은 제목부터 ‘워싱턴에서 바라본 좋은 아베, 나쁜 아베’이다.


   

  일본 경제 회생을 위해 애를 쓰는 아베는 ‘좋은 아베’이고, 전후 역사를 제멋대로 개정하려는 아베는 ‘나쁜 아베’란다. 일본 이외에는 지지하는 나라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평가가 민주당만이 아니라 워싱턴 전체의 평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불확실한 아베’도 있다. 집단적 자위권, 무기 수출 변경, 특정비밀보호법 등 안보 정책을 바꾸려는 아베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들은 좋게 보지만, ‘더욱 광범위한 정책 전문가들이나 학계, 매스미디어 관계자들’은 나쁘게 본다.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아베 정권의 참된 동기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할 때 도쿄 재판 결과를 수용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전후 레짐(체제)에서 탈각하겠다면, 세계 질서의 기반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이 근본적으로 아베 정권을 의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글은 경고로 끝난다. “일본은 자국이 제3의 경제대국이면서 세계무대 협역의 지위에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미국이 아베 정권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변경에 찬성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일본의 돈과 자위대 인력의 활용을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정부의 국방비 삭감으로 줄어든 부분을 일본이 방위비를 늘려 메워주기 바라는 것이다. 또 집단적 자위권을 명분 삼아 께름칙하고 지저분한 임무는 자위대가 대신해주기를 희망한다는 얘기도 있다. 일본 방위정책에 깊숙이 관여해온 야마자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제 늙은 경찰이기 때문에 데리고 다닐 경찰견이 필요하다. 거기에 아베가 놀아나고 있다”라고 혹평했다.


미국은 지금 아태 지역 미군의 중심을 인도양 및 동남아로 이동시키려 하고 있다. 동북아는 미국이 뒤에서 거중 조정하고 일본이 대리인 노릇을 해주기 바라는 모양새다. 그러려면 대리인이 잘해야 한다. 역사 문제로 분란이나 일으키고 군사력을 강화하겠다고 해서 긴장을 조성하면 미국이 안심하고 맡길 수 없다. 그동안은 말로 경고했지만 그래도 듣지 않으면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게 최근의 흐름인 듯하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가 분수령이 되라라 보인다. 아베를 반대하는 파벌 간 합종연횡이 일어날 경우 아베의 장기 집권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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