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8 15:12

김정일 위원장이 초지일관 사랑했던 김설송

북한의 핵 게임 이면에 김정은도 장성택도 북한 군부도 아닌 제3의 브레인 집단이 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메인 주제가 아니어서 그렇게 언급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다음에 그 내용을 자세하게 풀어 썼습니다. 어찌 하다 보니 그 다음 주 커버스토리로 올라가게까지 됐는데, 바로 김정은의 이복 누이이자 김정일과 본처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 김설송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김설송에 대한 얘기는 개인적으로 참 오래 전부터 들어왔지요. 2002년에 김정일 위원장이 박근혜 당시 한국 미래연합 대표를 초청한 것이 김설송을 후계자로 염두에 둔 계획의 일환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이니, 이미 10여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 그뒤로 북한의 후계 문제는 정철, 정남, 정은 등 주로 아들들 위주로 떠돌앗고, 그 사이에서 설송의 존재감은 외부로 드러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북의 핵 게임 국면을 취재하던 중 또다시 그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서 그동안의 의문들을 풀 수 있었습니다. 2000년 대 중반이후 후계 구도가 진행되어 오는 과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던 대목들, 김정일이 과연 여러차례 김정남과 연대 움직임을 보여온 장성택에게 정은의 후견을 맡겼을까,그리고 아무리 북한 체제라 해도 후계 수업 기간도 별로 길지 않은 29세의 후계자가 과연 상황 장악력을 어느 정도나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권력이 사라진 뒤에도 더욱 시스템적으로 작동하는 듯한 체제의 메카니즘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동안 김정은 실세설, 내지는 장성택 실세설을 주장해왔던 분들에겐 다소 논쟁적으로 보이겠지만, 이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고 북의 움직임을 들여다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그들이 힘이 없는 존재란 뜻이 아니라, 체제 작동의 중추가 어디에 있는가를 들여다 보자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이 분명하게 정리될 때, 이제 시간도 별로 남지 않은 남북관계에서 더이상 시간 낭비 하지 않고 보다 본질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게 가능해지리라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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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그녀를 후계자로 점찍었고, 김정은 등장 이후에도 권력 핵심에 있도록 했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290호] 승인 2013.04.08  07:39:13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평양을 방문한 지난 1월7일, 중국에서도 시진핑 시대 대북정책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평양을 찾았다. 바로 리진짜오(李金早) 상무부 부부장이다. 그는 평양에서 열린 제7차 북·중 경제무역 과학기술 협조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직후, 1월11일에는 압록강 대교 공사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리진짜오 부부장의 등장은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첫째는 자원개발과 인프라 건설에 치중해온 중국의 대북 접근에 시장의 확대라는 상무부 주도의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북한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은 여전히 낙후해 있다는 점이다. 리진짜오 부부장은 중국 상무부에서 주로 아프리카 개발원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따라서 그가 대북 정책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중국이 곧 북한을 아프리카와 같은 개발원조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는 아프리카를 대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불만이 베이징에 나와 있는 북한의 고위 무역일꾼들 사이에서 들려오기도 한다. ‘중국이 아프리카 54개 나라에는 1억 달러씩 주면서 조선에는 2800만 달러만 주고 원조라고 떠든다’라는 불만이다. 


   

ⓒ사진가

미국은 김설송(위)을 북한의 핵심 실세로 판단했다.김정일 위원장(가운데)은 김정은(맨오른쪽)이 후계자로 등장한 후에 김설송(맴왼쪽)을 후견인으로 내세웠다. 이 같은 사례는 중국이 왜 올해 초 대북 정보전에서 미국에 밀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시사IN>이 여러 차례 보도했듯이 지난 1월7일 구글 슈미트 회장의 방북은 민간 회사 차원만의 방북이 아니다. 그 뒤에는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비확산센터로 대표되는 미국 정부가 버티고 있다. 북한을 방문한 슈미트 회장은 마그네사이트 광산 개발도 제안했지만, 구글이 인도에 외주를 주고 있는 소프트웨어 생산 공장의 북한 이전을 타진하기도 했다. 즉 실현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북한을 최소한 인도 수준의 소프트웨어 개발 강국으로 대접한 것이다. 


북한 측이 희망해온 산업협력은 무시하고 자기들 필요에 따른 자원개발과 도로 및 교량 건설에만 몰두해온 중국에 비해, 일단 말로나마 높은 수준의 산업 기술 협력을 제안한 미국의 접근법은 매우 신선했다. 당연히 대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구글에 이어 코트의 악동이라 불리는 데니스 로드먼을 받아들여 김정은 제1비서가 귓속말을 나누며 친밀감을 과시한 반면, 중국이 보내온 신년 축하 메시지에 대해서는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 


장성택에 대한 판단에서 승부가 갈렸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국은 구글 회장을 상호협력 메신저로 보내고, 중국은 아프리카 개발원조의 선봉장을 보낸 차이는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한 판단의 차이에서 비롯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한 직후 ‘어린 조카를 후견하는 실세 장성택’이라는 이미지는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널리 통용됐다. 미국이나 중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8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장성택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일단 미국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지난해 8월 조지프 디트러니 국가정보국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이 포함된 비공식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해 접촉한 인물이 바로 장성택이었다. 북한 핵실험 및 핵 확산 방지라는 방북 목적과 관련해, 북한 내에서 이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로 장성택만 한 인물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뒤 그와의 접촉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장성택이 핵문제 결정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대신 9월 이후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등장해, 올해 2월12일 핵실험까지의 과정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당연히 말이 많았다. 장성택이 일부러 자리를 비켰을 뿐 막후에서는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에서부터, 그게 아니라 진짜 밀렸다는 얘기까지. 


지난해 8월 중국 역시 장성택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8월13일부터 18일까지 그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다. 당시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는 가을에 열리는 18차 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베이다이허 회의로 경황이 없을 때였다. 그럼에도 ‘북한 최고 실세’의 방중을 거절할 수 없어, 실제로 해준 것은 없지만 융숭하게 환대했다. 


그러나 그 뒤 그와의 채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중국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은 거기에 머물렀다. 대북 소식통은 “1990년대 이후 장성택은 중국이 바라보는 북한 내 최고 파트너였다. 그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달랐다. 지난해 12월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은 3차 핵실험 결정이라는, 고도의 종합적 판단이 요구되는 중대 사안을 아직 어린 나이의 김정은 제1비서가 독단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누군가 막후에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인물이 있을 텐데, 일단 장성택은 아니라는 점이 8월 방북 이후 확인됐다. 그렇다고 국내 일부에서 지적하듯이 군부 강경파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김정은 시대는 당에 의한 군 지배가 한층 강화됐다고 해오지 않았나.


   

ⓒ조선중앙TV/연합뉴스

2011년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백화점 시찰에 김설송(오른쪽 앞에서 두 번째)이 동행했다. 디트러니 방북이 실패로 끝난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미국은 북한의 보이지 않는 의사결정 네트워크를 추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북한의 IT를 누가 쥐고 있으며, 해커 부대를 누가 이끌고 있는가, 또한 북한 내 각 기관의 전산망을 누가 장악하고 있고, 기관 간 인트라넷을 누가 관리하는지에 관심을 집중했다고 한다. 그것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야말로 북한 내부 의사결정의 중추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김설송(金雪松). 김정일 위원장과 본처인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큰딸이자, 김정은 제1비서의 이복누이였다. 


“김정일 위원장이 설송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김설송에 대해서는 웬만한 대북 전문가조차 그 존재를 잘 모르거나, 안다 해도 ‘김정은 비서가 권력을 승계한 이후에는 권력의 속성상 은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소수 전문가들은 그녀의 존재를 늘 주시해왔다. 


특히 이들 중에는 미국의 움직임을 역으로 추적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핵실험을 준비 중인 북한에 미국이 왜 IT의 상징인 구글 회장을 접촉 포인트로 보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이를 쫓는 식이다. 이는 핵실험 국면을 배후에서 주도하는 북한 내 인물이 IT나 인터넷과 관련됐기 때문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북한 내 막후의 의사결정자를 추적해온 국내의 몇몇 정보 소식통 역시 김설송이라는 인물에 닿게 되었고, 그와 관련한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되었다. 즉 해외 네트워크로부터 “현재 북한 혁명가계의 실질적인 집행자는 김설송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유언 집행자로 세워놓고 간 사람도 김설송이었다. 김경희(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는 몸이 안 좋다. 그래서 모든 네트워크를 김설송이 다 짜고 있고, 김정은 비서 역시 그녀가 어머니처럼 안고 있다”라는 얘기를 듣게 된 것. 이 해외 네트워크는 “김정일 위원장이 설송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실권을 배치했는지 그 내용을 알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고 한다. 


매우 함축적이고 극적으로 김설송의 존재를 부각한 증언이다. 정리하자면, 핵실험을 전후한 현재의 북한 대내외 움직임을 막후에서 집행하는 인물은 바로 김정은 비서의 이복누이인 김설송이고, 김설송은 몸이 안 좋은 김경희를 대신한 김정일 위원장의 유언 집행자이며, 그런 배경에는 그녀를 특별히 사랑한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남겨준 막강한 권한이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제1비서 역시 김설송을 어머니처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김정은 비서의 후견인으로 고모부인 장성택이 지목되곤 했는데, 그보다는 고모인 김경희가, 더 나아가서는 이복누이인 김설송이 사실상의 후견인이었던 셈이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김설송의 이 같은 막강한 위상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앞의 소식통이 했다는 “김정일 위원장이 설송을 얼마나 사랑했나”라는 한마디에 다 녹아 있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야말로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북한 권력 승계의 내밀한 과정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 


먼저 간단한 인적 사항부터 정리해보자. 국내에는 김설송의 학력이나 경력 등에 대해 이설이 난무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1974년생, 즉 만으로 39세이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는 게 정설에 속한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90년대 말부터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에서 호위 업무와 일정 관리 등에 깊숙하게 관여해왔다고 한다. 심지어는 김 위원장에게 올라가는 보고를 모두 점검하는 일까지 담당해, 부인 고영희보다 깊숙이 김 위원장의 일상에 관여해왔다는 후문이다. 이런 이유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그녀를 일컬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세’라는 얘기가 나왔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설송을 20대 중반 나이 때부터 지근거리에 두고 총애했던 것은 그녀의 뛰어난 재능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설송을 ‘자신이 가지지 못한 많은 장점을 가진, 천재성이 있는 딸’이라고 봐왔다고 한다. 실제로 설송의 재능은 컴퓨터와 IT 분야에서 빛을 발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그를 지켜본 국내의 한 전문가는 그의 컴퓨터 공부가 매우 체계적으로 진행돼 왔다고 증언했다. “매킨토시 초기의 공부부터 시작해 고급단계까지 일련의 학습이 진행돼 왔는데, 중요한 것은 그의 공부 과정이 북한의 IT 분야가 체계화되는 과정과 맞물려서 진행돼 왔다는 점이다.”


IT 분야 전문가로 북한 해커 부대 등 관할


2000년대 초반 김정일 위원장이 컴퓨터에 눈을 뜨게 된 것 역시 김설송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설송의 컴퓨터 및 IT에 대한 공부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북한 컴퓨터 네트워크의 구축과 맞물려 있었다. 바로 이런 부분이 김 위원장이 설송에 대해 ‘자신이 가지지 못한 많은 장점을 가진 딸’이라고 여기게 한 것이다. 


게다가 설송에 대한 김 위원장의 생각은 단순히 ‘총애하는 딸’ 수준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북한 후계 과정에 대한 논의는 주로 남자 형제들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러나 실제로 김 위원장의 마음속 후계자는 적어도 2007년까지는 초지일관 김설송이었다고 한다. 설송을 상수로 해서 정남, 정철, 정은 등 남자 형제들의 운명이 결정될 정도로 설송에 대한 김 위원장의 믿음이 깊었다는 것이다(19쪽 딸린 기사 참조).


더 중요한 것은 설송이 후계자가 되든 안 되든, 그를 북한의 권력 중추, ‘혁명가계의 실질적인 집행자’로 세우기 위한 작업이 김 위원장에 의해 진행돼 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설송을 후계자로 염두에 뒀던 시기나, 그렇지 않았던 시기가 차이가 없다. 오히려 후계 구도에서 탈락된 이후 그녀의 권력은 더욱 강화됐다. 


이를 좀 더 나눠서 보자. 국내에서는 설송의 권력 내 보직에 대해 서기실에 있다느니, 선전선동부에서 근무했다느니, 당 중앙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라느니 설왕설래가 많다. 결론적으로는 다 틀리기도 하고 다 맞기도 하다. 2005년까지 설송이 권력의 핵심 부서들을 다양하게 경험하도록 김 위원장이 배려를 해왔기 때문이다. 즉 서기실, 선전선동부, 당 중앙 조직지도부 등을 경험하도록 하면서 권력의 작동기제를 열심히 가르쳤고, 본인 또한 열심히 배우고자 했다. 명백한 후계자 수업이었다. 


2006~2007년에 이르면 권력의 핵심 축에 해당하는 한 부분을 아예 설송에게 떼어줌으로써 독자 세력화가 가능하도록 도왔다. 북한 권력 기관 내부를 잇는 전체 인트라넷을 설송이 관장하도록 조처를 취한 것이다. 또한 CIA와 맞먹는다는 북한의 해커 부대를 비롯해 컴퓨터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설송의 권한 속으로 들어왔다. 


더 결정적인 권력 집중은 2008년 10월 이후 이뤄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8월에 쓰러졌다가 두 달여의 혼수상태를 겪고 깨어난 직후였다. 그가 쓰러졌던 기간 중 김 위원장이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매제인) 장성택이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난 장남) 김정남과 손을 잡고 권력을 휘두르고 다닌 것이다. 당시 설송이나 정철은 이미 후계 구도에서 탈락했고, 막내 정은은 새로운 후계자로 겨우 이름을 알릴 정도였기에 그들에게 맞서기는 역부족이었다. 장성택-김정남 세력이 막강한 가운데 김경희·김설송·김옥·김정은이 힘겹게 맞서며 김 위원장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던 형국이었다. 


마침내 두 달 만에 깨어난 김 위원장은 김정남을 불러 혼을 낸 후 권력 주변에서 추방해버렸다. 그다음에는 장성택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과제였다. 김경희나 김설송이나 김정은이나 모두 대외적 경험과 지명도가 취약하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해외 지명도가 높은 장성택을 남겨두어 북한 권력의 숨구멍으로 활용하되, 실권에서는 철저하게 배제하는 쪽을 택했다. 특히 돈줄을 그에게 넘겨주지 않음으로써 그가 세력화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반면, 모든 권력과 돈줄은 김경희-김설송-김정은의 삼각축에 집중하도록 교묘하게 배분했다. 


권력과 돈줄, 김경희-김설송-김정은에게  


예를 들면 이렇다. 북한의 최대 권력기관이라 할 당과 군을 김정은 비서에게 직접 연결하기에는 그가 아직 어려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김 비서에게는 대신 정보기관과 보위부 등을 연결해놓고, 당과 군의 핵심부는 설송을 중심으로 편제를 짰다. 최고 브레인들이 집결해 있는 당 중앙위를 설송에게 연결함으로써 그가 IT와 인트라넷에 기반한 기존 권력 기반 위에 브레인 네트워크, 즉 의사결정의 중추를 장악하도록 안배한 것이다. 


또한 북한의 가장 큰 돈줄인 군의 제2경제위원회를 설송의 남편에게 맡겨 군심을 장악하게 했고, 군부를 통제하는 미션은 최룡해가 담당토록 했다. 최룡해는 알려진 것처럼 장성택의 인맥이 아니라, 김씨 가문 편에서 장성택을 견제하는 인물인 셈이다. 김경희는 기존 경공업 부문에 비자금까지 관리하면서 장성택에 대한 가장 막강한 견제자 구실을 담당해 왔다. 그가 사망할 경우 그의 모든 것은 설송이 승계하게 된다. 즉 최고 지도자로 등장한 김정은 비서를 정점으로 그 막후에 김경희와 김설송이 후견인으로 버티고 있는 권력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브레인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의사결정의 중추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김설송이다. 


미국이 북한 권력 내부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IT의 상징 구글 회장을 보냈다는 것은 김설송을 통하지 않고는 북한 권력 핵심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송 쪽에서도 미국의 이런 접근에 화답하는 듯한 움직임을 한때 보인 적이 있다. 평양 내에서 휴대전화로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도록 인터넷 망을 일시 여는 조처를 취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최근에는 상황이 약간 역전된 듯이 보인다. 휴대전화 인터넷 사용이 다시 닫혔고, 대신 중국 지린성 정부가 북한으로 연결되는 철도 도로를 크게 확충하고 베이징~평양 간 정기 항공노선을 일주일에 세 번에서 다섯 번으로 늘리는 등 핵실험 와중에도 중국이 대북 경협을 크게 확대하는 조처를 취한 것이다. 순서상으로 보면 이란 카드로 미국을 끌어들이고, 미국 카드로 중국의 애를 끓게 하는 꽃놀이패를 흔들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우리다. 미국과 중국은 점차 과거의 관성에서 탈피해 북한의 최고 의사결정 중추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슬슬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2002년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한 이산가족 1만명 프로젝트다. 그런데 과연 어떤 루트로 이 사업을 할 것인가가 관심이다. 지난 시기처럼 한물간 통전부와 장성택 라인을 붙들 경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굴레 속으로 또다시 남북관계를 밀어넣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은 우리도 실질적 결정력을 가진 북한의 최고 의사결정 중추를 대화의 파트너로 끌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구글을 보냈듯이, 우리만의 참신한 어젠다와 독자적인 접근 전략을 시급히 수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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