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6 10:06

마지막 한 수 에 강한 일본 외교


북·일 관계는 일본 입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전후정치의 총결산’으로 중요합니다. 미국에게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맞서는 대북 경제 카드를 손에 쥔다는 의미가 있기도 하지요.
 
베이징에서 열린 북·일간 두 차례 회담을 살펴보면 ‘마지막 한 수’에 강한 일본 외교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일본은 그동안 아베의 대북 정책 유산을 청산하지 못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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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업보로 그동안 동북아 외교의 미아로 떠돌았지요. 후쿠다 총리 체제가 되어서도 ‘선 납치문제 해결 후 테러지원국 해제’를 미국에 요청했다가 번번히 퇴짜를 맞는 수모를 당해왔습니다. 그러자 강수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중국 카드의 활용입니다. 후쿠다 총리는 5월7일 방일 중인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과 ‘전략적 호혜관계 강화’를 천명해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미국은 즉각 북한과 테러지원국 협상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반드시 언급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합니다.

두 번째 강수가 이어졌습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없이는 2.13 합의에 따른 20만t 원유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사실 6자회담을 재개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미국이 북한에게 일본을 좀 만나주라고 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외용 쇼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이미 북한과 일본은 지난 5월 초 베이징에서 만나 서로의 입장을 타진했고 일정을 조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납치자 문제에 대한 해법, 수교 배상금 액수 문제, 대북 식량 지원 문제 등에 대해 협의가 이뤄졌습니다. 즉 ‘일반 용 버전’ 외에 ‘선수 용 버전’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일본이 한반도 판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수교 배상금 100억 달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퍼주기 소리까지 들으며 나름의 위치를 지켜오다가 막판에 굴러 떨어진 데 비해, 그 자리를 수교배상금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운 일본이 냉큼 앉아 버렸습니다.

                                                                                             

                                                                                                              <시사IN>  남문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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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3 19:27

쉬진핑 방북 때 식량 15만t 들어간다


쉬진핑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중국 국가 부주석으로 명실상부한 차세대 지도자입니다.
지난해 10월15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제 17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 주석 계열의 리커창을 누르고 후계자로 부상한 중국 정치의 신데렐라입니다.

그가 6월17일부터 19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고 해서, 내외의 한반도 관측통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관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왜 갑자기 그가 평양에 가나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평양 갈 때 뭘 가지고 가나입니다. 즉 선물이 뭐냐는 거지요.

왜 갑자기 평양행을 택했나 하는 것은 나름 복잡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뒤로 미루고,
일단 선물 문제부터 들여다보지요. 최근 한국 언론 베이징 특파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방북을 계기로 중국의 대북 식량 지원이 재개될 것이라는 데까지는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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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연 어떤 식으로 얼마나 지원이 될지는 나오지 않고 있군요.

제가 파악하기론 이렇습니다. 식량 지원 방식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올해 초 중국이 식량의 해외 수출을 통제해 왔는데
지난 6월10일 북에 대해서만 이를 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 의견으로는 이것만으로도 약 10만t의 식량 지원 효과가 있다고 하는군요.

이 것 외에도 쉬진핑이 방북할 때 직접 지원하는 식량이 있는 데, 그 규모가 5만t이라고 합니다. 합쳐서 15만t인 셈이지요. 중국 제 5세대 지도자가 평양을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15만t의 식량 지원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군요.
지난해 10월29일 류윈산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의 커우신(口信, 구두친서)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조만간 중국을 다녀갔으면 한다는 초청장이지요. 그때부터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대가로 중국이 약 15만t의 식량을 지원할 거라는 얘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그러나 올해 북의 식량난이 계속되는 데도 중국은 3월과 4월에 각각 1만t씩만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4월26일 베이징을 찾은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쉬진핑을 만났을 때 왜 15만t 주기로 해놓고 2만t만 주느냐고 따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15만t이 그 15만t인지는 좀더 확인해봐야겠지만 미국의 50만t 지원 식량 첫배가 다음 주면 남포항에 도착하는 데 이어, 중국의 지원 식량까지 도달하게 되면 평양 분위기가 많이 나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시사IN>  남문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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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7 03:52

쇠고기 재협상 해주고 재고무기 땡 처리?


쇠고기 재협상 해주고 재고무기 땡 처리?

성난 민심은 이미 쇠고기를 넘어 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87년 6.29의 향수를 그리워 하나 봅니다. 한국과 미국이 이미 이면 교섭을 끝내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일부에서는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일부가 교체되는 시점에 쇠고기 재협상 카드가 전격 등장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이 재협상에 응할 리 없다고요?
최근 주목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한·미 양국 사이에 주로 미제 재고무기 판매와 관련한 협상이 갑자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중 하나가 공격용 아파치 헬기 도입 문제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미제 중고 헬기 도입과 한국형 헬기 개발로 의견이 분분하던 이 문제가 지난 5월 말 갑자기 미제 헬기 36대 (약 9천억원) 구입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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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비슷한 시점에 아파치 헬기 보다 규모가 더 큰 미제 재고무기 관련 협상이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5월21일부터 23일까지 열린 WRSA(전시비축탄약) 관련 제5차 회의입니다. WRSA(전시비축탄약)란 미군이 지난 70년대와 80년대 미국에서 저장공간을 초과하거나 도태된 탄약을 한국에 들여와 유사시 대비용으로 비축 관리해온 탄약들로,  약 5조원대에 이릅니다. 미국은 지난 2000년부터 우리 정부에 이를 구매할 것을 종용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군 전력 증강과는 무관한 쓰레기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시민단체들 입장과 선별 구매할 경우 무기로서 가치가 있다는 국방부 입장이 엇갈렸는데, 이번 5차회의를 계기로 선별 구매하기로 결론이 모아졌다는군요. 어느 정도 규모가 될지 금액은 나오지 않았는데 전체 5조원 대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일 것입니다.

갑자기 왜 미제 무기 구매 문제를 장황하게 늘어놓느냐구요?
미국이 쇠고기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의 분석에는 미국내 축산자본의 막강한 로비력에 대한 평가가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회에서 축산자본의 힘을 찍어 누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바로 군수산업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전개되는 초불시위는 축산 자본 뿐 아니라 군수산업의 이해관계와도 직결돼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4월 이명박 대통령 방미 이후, 7월 부시 대통령 방한이 이뤄지기 전까지, 군수산업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많은 현안이 산적해 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재고무기 판매처럼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관철시키지 못한 많은 군수 관련 요구 사항을 이 기간에 몰빵을 하려고 해왔는데 자칫 촛불시위 때문에 불안하기 그지 없게 된 것이지요. 지금은 시민의 저항이 반 이명박에 머무르고 있지만, 반미로 확대될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출액(1년에 약 1조)의 몇 배를 능가하는 군수산업의 무기 판매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한국 시민의 저항 운동이 반미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한편, 재고무기 판매라는 군수산업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미국도 쇠고기 문제를 적절한 선에서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미국이 경우에 따라서는, 민간 자율규제 수준을 넘어, 쇠고기 협상안의 부칙 조항에 예외항목을 두어서라도 30개월 이상 수출을 금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워싱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한·미 양국이 이미 지난 5월 중순 이후부터 쇠고기 재협상과 자동차 및 무기 수입 확대를 패키지로 한 물밑 대화를 진행했고, 이미 가닥이 잡혔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6월3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갑자기 등장해 미국 측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을 ‘용감하게’ 요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전혀 다르게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들여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얘기할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못 느끼셨나요?

오비이락 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점이 바로 한국이 미제 중고 아파치 헬기 구매와 WRSA 선별 구매를 결정하고 난 직후라는 점에서 상관 관계를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그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요.
군수 관련 현안이 이것 말고도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줄줄이 늘어섰다는 점에서 아득한 생각이 듭니다. 쇠고기 재협상을 통해 30개월 이상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알량한 양보 하나 받아내면 끝일까요. 그러고 난 뒤 또 얼마나 많은 우리의 혈세가 알게 모르게 미제 중고 무기와 고철 덩어리 수입을 위해 빠져나가야 할까요? 
 

<시사IN> 남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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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21:00

'반미감정 지렛대로 재협상 읍소설'...워싱턴에 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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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쇠고기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이면 접촉에서 극약 처방을 빼들었다. 기존의 통상 교섭 논리로는 미국 측이 꿈쩍도 하지 않자, 한국민의 반미 감정 확대 가능성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에게 읍소 내지는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주변에서는 기존의 통상 교섭 채널이 아닌 안보 라인이 대미 접촉의 창구로 등장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정부 주변과 워싱턴 정가 소식에 밝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동원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쇠고기 문제에 대한 한국민의 저항이 이대로 계속 되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발 차원을 넘어 반미 감정으로 확산될 것이다, 자칫하면  노무현 정부 초기 보다 반미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는 논리다.

지난 주 워싱턴 정가 관계자와 통화한 국내의 한 전문가는 “미국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초기 한국의 반미 운동에 대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악몽으로 여긴다”며 “최근 한국 정부가 주미 한국 대사관 등을 통해 이같은 논리로 미국 측 관계자들을 설득 및 압박한 이후, 미국에서도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미국 측은 특히 6·10 항쟁 기념일과 6·15 선언 기념일이 모여 있는 6월을 한국 내 반미 감정 폭발의 시기로 보고,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염려하기 시작했다.

최근 안보 당국이 동원된 대미 설득의 초점은 6월3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 참석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우리 국방 당국이 나서 ‘쇠고기 문제를 이대로 두면 한미 간 안보 동맹에도 심각한 악영향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으니, 게이츠 장관이 미 무역대표부 등 통상 부서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한국 측의 이같은 ‘읍소’에 게이츠 장관은 “그 문제는 내 소관 사항이 아니다”면서도,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최근 재협상 필요성을 부인했지만, 서울과 워싱턴 정가 주변에서는 한미 양국이 이같은 물밑 접촉을 통해 일단 추가협상을 통해 30개월 이상 소고기의 수입 중단 등에 합의 하는 카드를 이미 마련해 둔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 대로 의회의 반발과 올 11월 대선에서의 악영향 등 때문에 부시 행정부도 결단을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상황도 안좋고 시기도 안좋다. 그러나 미국도 이제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기만은 어려워졌다.”

최근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 중단을 미국에게 요청하며 ‘미국 측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해 가기로 했다’는 정부와 한나라당 측의 갑작스러운 입장 선회의 이면에는 급박하게 전개된 한미 간 이면 접촉이 배경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시사IN> 남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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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6 11:05

50만t 식량지원 둘러싼 미.중 외교전 내막


지난 4월 말부터 김정일 위원장 방중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물밑 외교전이 치열했다. 미국은 50만t 식량 지원 카드로 그의 방중을 막는 데 성공했는데 그동안 한국은 구경꾼 신세로 전락했다.
[36호] 2008년 05월 20일 (화) 11:38:47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Reuters=Newsis
베이징을 방문한 박의춘 북한 외무상(왼쪽)이 양제쓰 중국 외교부장과 포옹하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문에 한국민에게 미국이 지금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지만,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생큐, 아메리카’를 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 정부가 ‘아무것도 모른 채’ 뒷짐 지고 있는 사이 북한이 통째로 중국으로 넘어갈 뻔한 것을 미국이 가까스로 붙잡아두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에 넘어간다는 것은 곧 김정일 위원장 방중을 가리키는 얘기다. 지난 2006년 9월의 방중 취소 이후 북한·중국 간에는 김 위원장 방중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계속돼왔다. 이런 와중에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면 그 순간, 북한이 중국 영향권에 편입돼 ‘동북4성화’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게, 북·중 관계 내막을 아는 전문가의 지배적 견해였다.

바로 김 위원장의 방중이 막 성사되려는 순간, 미국이 북한에 대한 50만t의 식량 지원 카드를 급히 꺼내들어 제동을 건 것이다. 바로 지난 4월 말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일이다. 대북 소식통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김 위원장 방중을 둘러싸고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여야 할 한국 정부는 어디 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라며 신랄하게 꼬집었다.

박의춘 외무상 방중으로 물밑 전쟁 시작


외교 전쟁의 첫 스타트는 박의춘 북한 외무상의 4월26일 방중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북한 핵 신고 및 6자회담 문제 협의가 목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과 베트남을 상대로 한 대규모 식량 지원 요청과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 협의를 위한 것이다.

얘기는 지난해 10월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10월16~18일 베트남의 농득마인 서기장이 50년 만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이 앞으로 베트남을 방문할 경우 베트남 측이 식량 30만t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이 양국 간에 이뤄졌다. 그러자 열흘 후인 10월29일, 류윈산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이 달려와 후진타오 주석의 ‘커우신(口信·구두 메시지)’을 전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하루빨리 방문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 경우 최소 10만t(최근 밝혀진 바로는 15만t)의 식량 지원이 약속되었다(<시사IN> 제10호).

김 위원장은 방중을 통한 식량 지원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가급적이면 남한·미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식량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주변에는 북한이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간 전문가로 득실댔다. 그들은 어차피 5월만 되면 북한이 못 버티고 손을 내밀 것이라며, 이 대통령을 몰아갔다. 최근까지도 북한이 먼저 달라고 요구해야 식량을 주겠다며, 무릎 꿇기를 요구했다. 미국은 미국대로 50만t 지원설을 흘리면서도, 세계식량기구(WFP) 쪽 사정 때문에 빨라야 올해 12월에나 지원이 가능하다는 방침이었다. 5, 6월에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할 처지인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Reuters=Newsis
영변 원자로 가동 관련 자료를 들고 판문점을 넘어오는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가운데).
박의춘 외무상의 방중에는 여러 팀이 따라붙었다. 그 중의 한 팀이 베이징에 도착한 다음 날, 베트남으로 날아가 김 위원장의 방문을 위한 정지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과의 교섭은 4월29일 박 외무상과 중국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 국가 부주석 사이에 이뤄졌다. 박 외무상은 15만t을 주기로 해놓고 3월과 4월에 1만t씩밖에 안 줬다며,  나머지를 빨리 달라고 요청했다. 시진핑 부주석은 “중국에 제5세대 지도자가 등장했으니 위원장께서 한번 다녀가셔야 하지 않느냐”라며 김 위원장 방중을 식량 지원과 연계했다. 박 대사는 본인도 뜻을 전하겠으니 중국 측도 공식적으로 초청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5월5일 류샤오밍 북한 주재 중국 대사의 후진타오 주석 구두 친서 전달이었다. 내용은 당연히 김정일 위원장 방중에 대한 공식 초청이었다.

워싱턴이 긴장했다. 그동안 방중설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틀림없었다. 김 위원장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베트남과 중국으로 떠나버리면 미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다. 외교적 주도권 상실뿐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합의한 화려한 외교 쇼도 불투명해진다.

결국 미국이 대신 식량을 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4월22일부터 2박3일간 평양을 다녀온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이 2주 만인 5월8일 또다시 방북길에 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미국 측은 성 김 과장의 재방북에 앞서 5월5일, 국무부와 NSC 등 각 부처 대표단을  평양에 급파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질질 끌어온 50만t 식량 지원 문제를 5월8일까지 단 나흘간 협상으로 타결지었다. 5월8일 조선중앙통신이 미국과 식량지원 협상이 잘 진행됐다고 만족을 표시할 정도였다. 바로 이날 성 김 과장이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이틀 뒤인 5월10일 북한으로부터 영변 원자로 가동 관련 서류 일체를 선물로 받아 개선장군처럼 판문점을 넘어왔다. 미국은 냉각탑 폭파 쇼 등 세계적 이벤트뿐 아니라 김 위원장의 방중을 차단함으로써 일단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다.

현재 외교가에는 중국 CCTV가 갑자기 수호이-17 전투기의 단둥 배치 사실을 보도하고, 싱가포르 외무장관이 느닷없이 평양과 베이징 사이를 왔다갔다 한 것을 두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항의 표시라고 해석한다. 

문제는 미국 혼자 50만t 식량을 다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벌써 외교가에는 그 중 20만t은 한국에 떠맡길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물론 우리 정부는 미국이나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북한이 우리에게 요청할 리도 만무하고, 미국도 한국 정부 사정을 봐줄 처지가 아니다. 조만간 대북 지원용 식량을 실은 첫 배가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압력도 높아질 듯하다. 쇠고기 개방을 둘러싼 외교 마찰에 이어, 대북 식량 지원에서도 미국에 할 말이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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