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3 19:27

쉬진핑 방북 때 식량 15만t 들어간다


쉬진핑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중국 국가 부주석으로 명실상부한 차세대 지도자입니다.
지난해 10월15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제 17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 주석 계열의 리커창을 누르고 후계자로 부상한 중국 정치의 신데렐라입니다.

그가 6월17일부터 19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고 해서, 내외의 한반도 관측통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관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왜 갑자기 그가 평양에 가나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평양 갈 때 뭘 가지고 가나입니다. 즉 선물이 뭐냐는 거지요.

왜 갑자기 평양행을 택했나 하는 것은 나름 복잡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뒤로 미루고,
일단 선물 문제부터 들여다보지요. 최근 한국 언론 베이징 특파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방북을 계기로 중국의 대북 식량 지원이 재개될 것이라는 데까지는 나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과연 어떤 식으로 얼마나 지원이 될지는 나오지 않고 있군요.

제가 파악하기론 이렇습니다. 식량 지원 방식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올해 초 중국이 식량의 해외 수출을 통제해 왔는데
지난 6월10일 북에 대해서만 이를 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 의견으로는 이것만으로도 약 10만t의 식량 지원 효과가 있다고 하는군요.

이 것 외에도 쉬진핑이 방북할 때 직접 지원하는 식량이 있는 데, 그 규모가 5만t이라고 합니다. 합쳐서 15만t인 셈이지요. 중국 제 5세대 지도자가 평양을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15만t의 식량 지원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군요.
지난해 10월29일 류윈산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의 커우신(口信, 구두친서)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조만간 중국을 다녀갔으면 한다는 초청장이지요. 그때부터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대가로 중국이 약 15만t의 식량을 지원할 거라는 얘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그러나 올해 북의 식량난이 계속되는 데도 중국은 3월과 4월에 각각 1만t씩만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4월26일 베이징을 찾은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쉬진핑을 만났을 때 왜 15만t 주기로 해놓고 2만t만 주느냐고 따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15만t이 그 15만t인지는 좀더 확인해봐야겠지만 미국의 50만t 지원 식량 첫배가 다음 주면 남포항에 도착하는 데 이어, 중국의 지원 식량까지 도달하게 되면 평양 분위기가 많이 나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시사IN>  남문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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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6 11:10

누가 남북관계를 이렇게 만들었나


북한이 올해 5월이면 식량난 때문에라도 남한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는 정부 주변 민간 대북 전문가들의 무책임한 조언이 대통령 인식을 오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36호] 2008년 05월 19일 (월) 10:27:15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남문희
북한이 올해 5월이면 식량난 때문에라도 남한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는 정부 주변 민간 대북 전문가들의 무책임한 조언이 대통령 인식을 오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대북 정책이 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권 초기에는 ‘비핵개방 3000’이 정부 정책이라고 선전해왔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쑥 들어갔다. 비핵이니 개방이니 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각론이 전무하다. 그러니 정책이라기보다는 구호에 가깝다.

대신 요즘 정부가 북한과 관련해 하는 얘기는 딱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방침’에,  또 하나는 ‘신념’에 가깝다. 우선 신념부터 보자면, 이런 거다. 한·미 공조가 굳건하기 때문에 북한이 절대로 ‘통미봉남’에 성공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미 한·미 공조에 구멍이 숭숭 났고, 통미봉남이 진행되는데도, 같은 얘기가 반복된다.

한·미 공조와 통미봉남에 대한 그릇된 신념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4·8 싱가포르 북·미 합의 이튿날 정부 당국자가 베이징에서 미국 측과 만났으나 미국 측은 핵신고 문제 외에, 정말 중요한 북·미 관계 일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새 정부들어 정부 주변에 상근하다시피 하는 이른바 민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여기에 한술 더 떠, 아무리 국무부가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합의를 해도, 체니 등 네오콘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며 대통령을 안심시켰다. 그래서 “통미봉남은 불가능하다”라고 대통령이 기세 좋게 선포하고 워싱턴에 당도했는데, 웬걸 미국 측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끄집어낸 게 바로 남북연락사무소 개설 제안이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얼마 전 청와대 고위 당국자라는 사람이 기자들을 불러, 미국이 북한과 만나기 전후에 우리에게 모든 얘기를 해준다며, 또다시 통미봉남 불가론을 끄집어냈다. 그러나 이제는 기자들도 그 얘기를 안 믿는다. 그 중 한 기자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는지, “이런 얘기 자꾸 하는 거 보니까 진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는 투로 자기 기사 중간쯤에 박아넣어 버렸다.

   
ⓒ뉴시스
북한 요청을 전제로 대북 직접 지원을 고집하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가운데).
대북 정책은 이미 실종한 지 오래다. 오직 남은 건, “북한의 요청이 오면 식량 지원을 검토하겠다”라는 말뿐이다. 이 아이디어의 근원을 따져보니, 새 정부 주변에 모여든 민간 전문가들 머리에서 나왔단다. 그들은 나름 전문지식을 동원해 북한이 올해 엄청난 식량난에 처할 것이기 때문에 5월만 되면, 결국 남쪽에 손을 내밀게 되어 있다며, 우리가 서두를 것이 하나 없다고, 보고서를 쓰고 정책 조언을 했다. 새 정부의 모든 대북 발언이나 인식의 밑바탕에는 바로 그들의 이런 ‘전문적 식견’이 작동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은 하나만 알고 둘, 셋은 몰랐다. 북한의 식량난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다 알 만한 사실이다. 정말로 전문가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중국이라는 선택지도 있고, 베트남도 있고, 미국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북한이 곧 무릎을 꿇을 거라며 다른 가능성에는 눈과 귀를 막았다. 북한 문제에 문외한인 대통령은 나름 전문가라고 알려진 이들의 조언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다. 보다 못한 외교부와 국정원이 지난 4월 말 노무현 정부 때 주기로 했던 옥수수 5만t이라도 먼저 주자고 안을 내자, 대통령이 나서서 북한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왜 주냐며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또다시 보름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사이 미국은 북한과 50만t 식량 지원 협상을 끝내버린 것이다.

물론 북한이 앞으로 그들 민간 전문가의 예언대로 우리에게 손 벌릴 리는 만무하다. 대신 우리 쪽에서 요즘 하는 얘기를 들여다보면 “제발 우리한테 쌀 좀 달라고 해주세요”라고 애걸하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만 하다. 몇 사람의 잘못된 ‘전문적 식견’이 나라를 몇 달 사이 수렁에 빠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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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6 11:05

50만t 식량지원 둘러싼 미.중 외교전 내막


지난 4월 말부터 김정일 위원장 방중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물밑 외교전이 치열했다. 미국은 50만t 식량 지원 카드로 그의 방중을 막는 데 성공했는데 그동안 한국은 구경꾼 신세로 전락했다.
[36호] 2008년 05월 20일 (화) 11:38:47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Reuters=Newsis
베이징을 방문한 박의춘 북한 외무상(왼쪽)이 양제쓰 중국 외교부장과 포옹하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문에 한국민에게 미국이 지금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지만,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생큐, 아메리카’를 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 정부가 ‘아무것도 모른 채’ 뒷짐 지고 있는 사이 북한이 통째로 중국으로 넘어갈 뻔한 것을 미국이 가까스로 붙잡아두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에 넘어간다는 것은 곧 김정일 위원장 방중을 가리키는 얘기다. 지난 2006년 9월의 방중 취소 이후 북한·중국 간에는 김 위원장 방중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계속돼왔다. 이런 와중에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면 그 순간, 북한이 중국 영향권에 편입돼 ‘동북4성화’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게, 북·중 관계 내막을 아는 전문가의 지배적 견해였다.

바로 김 위원장의 방중이 막 성사되려는 순간, 미국이 북한에 대한 50만t의 식량 지원 카드를 급히 꺼내들어 제동을 건 것이다. 바로 지난 4월 말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일이다. 대북 소식통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김 위원장 방중을 둘러싸고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여야 할 한국 정부는 어디 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라며 신랄하게 꼬집었다.

박의춘 외무상 방중으로 물밑 전쟁 시작


외교 전쟁의 첫 스타트는 박의춘 북한 외무상의 4월26일 방중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북한 핵 신고 및 6자회담 문제 협의가 목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과 베트남을 상대로 한 대규모 식량 지원 요청과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 협의를 위한 것이다.

얘기는 지난해 10월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10월16~18일 베트남의 농득마인 서기장이 50년 만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이 앞으로 베트남을 방문할 경우 베트남 측이 식량 30만t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이 양국 간에 이뤄졌다. 그러자 열흘 후인 10월29일, 류윈산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이 달려와 후진타오 주석의 ‘커우신(口信·구두 메시지)’을 전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하루빨리 방문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 경우 최소 10만t(최근 밝혀진 바로는 15만t)의 식량 지원이 약속되었다(<시사IN> 제10호).

김 위원장은 방중을 통한 식량 지원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가급적이면 남한·미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식량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주변에는 북한이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간 전문가로 득실댔다. 그들은 어차피 5월만 되면 북한이 못 버티고 손을 내밀 것이라며, 이 대통령을 몰아갔다. 최근까지도 북한이 먼저 달라고 요구해야 식량을 주겠다며, 무릎 꿇기를 요구했다. 미국은 미국대로 50만t 지원설을 흘리면서도, 세계식량기구(WFP) 쪽 사정 때문에 빨라야 올해 12월에나 지원이 가능하다는 방침이었다. 5, 6월에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할 처지인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Reuters=Newsis
영변 원자로 가동 관련 자료를 들고 판문점을 넘어오는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가운데).
박의춘 외무상의 방중에는 여러 팀이 따라붙었다. 그 중의 한 팀이 베이징에 도착한 다음 날, 베트남으로 날아가 김 위원장의 방문을 위한 정지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과의 교섭은 4월29일 박 외무상과 중국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 국가 부주석 사이에 이뤄졌다. 박 외무상은 15만t을 주기로 해놓고 3월과 4월에 1만t씩밖에 안 줬다며,  나머지를 빨리 달라고 요청했다. 시진핑 부주석은 “중국에 제5세대 지도자가 등장했으니 위원장께서 한번 다녀가셔야 하지 않느냐”라며 김 위원장 방중을 식량 지원과 연계했다. 박 대사는 본인도 뜻을 전하겠으니 중국 측도 공식적으로 초청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5월5일 류샤오밍 북한 주재 중국 대사의 후진타오 주석 구두 친서 전달이었다. 내용은 당연히 김정일 위원장 방중에 대한 공식 초청이었다.

워싱턴이 긴장했다. 그동안 방중설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틀림없었다. 김 위원장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베트남과 중국으로 떠나버리면 미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다. 외교적 주도권 상실뿐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합의한 화려한 외교 쇼도 불투명해진다.

결국 미국이 대신 식량을 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4월22일부터 2박3일간 평양을 다녀온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이 2주 만인 5월8일 또다시 방북길에 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미국 측은 성 김 과장의 재방북에 앞서 5월5일, 국무부와 NSC 등 각 부처 대표단을  평양에 급파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질질 끌어온 50만t 식량 지원 문제를 5월8일까지 단 나흘간 협상으로 타결지었다. 5월8일 조선중앙통신이 미국과 식량지원 협상이 잘 진행됐다고 만족을 표시할 정도였다. 바로 이날 성 김 과장이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이틀 뒤인 5월10일 북한으로부터 영변 원자로 가동 관련 서류 일체를 선물로 받아 개선장군처럼 판문점을 넘어왔다. 미국은 냉각탑 폭파 쇼 등 세계적 이벤트뿐 아니라 김 위원장의 방중을 차단함으로써 일단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다.

현재 외교가에는 중국 CCTV가 갑자기 수호이-17 전투기의 단둥 배치 사실을 보도하고, 싱가포르 외무장관이 느닷없이 평양과 베이징 사이를 왔다갔다 한 것을 두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항의 표시라고 해석한다. 

문제는 미국 혼자 50만t 식량을 다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벌써 외교가에는 그 중 20만t은 한국에 떠맡길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물론 우리 정부는 미국이나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북한이 우리에게 요청할 리도 만무하고, 미국도 한국 정부 사정을 봐줄 처지가 아니다. 조만간 대북 지원용 식량을 실은 첫 배가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압력도 높아질 듯하다. 쇠고기 개방을 둘러싼 외교 마찰에 이어, 대북 식량 지원에서도 미국에 할 말이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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