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06 17:56

부시는 김정일을 만나지 않는다고?


부시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기자회견 때 김정일을 만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 거부가 아니다. 남.북.미 3국 평화협정에 대한 거부이다. 즉 '남한 따로, 북한 따로' 상대하겠다는 뜻이다.
[33호] 2008년 04월 28일 (월) 10:52:35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연합뉴스
미국 시각 4월19일 오전 워싱턴에 있는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부시 대통령.

한국 시간 4월20일 새벽 2시께. 미국 대통령 별장인 워싱턴의 캠프 데이비드에서는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질의 응답이 벌어졌다. 한·미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이 “임기 중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느냐”라는 한국 특파원 질문에 매우 단호한 태도로 “노(No)” 한 것이다.

‘노’라고 할 때, 그의 표정이 얼마나 결연했던지 졸음을 참으며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내내, 뇌리에 깊이 각인될 지경이었다. 당연히 부시의 이 한마디는 다음 날 국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부시 대통령, 임기 중 김정일 만날 의사 없어” 대략 이런 종류의 기사가 도배를 했고 이 질문의 주인공인 조선일보 특파원 역시 같은 요지로 기사를 썼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워싱턴 전문가들은 이를, 기자들의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치부한다. 즉 부시가 ‘노’라고 한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인데 기자들이 오해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문제의 조선일보 특파원 질문은 김정일을 만날 생각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은 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날 생각이 있느냐를 물은 것이었다”라고 하면서, “부시 대통령 대답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라고 밝혔다. 그의 지적대로 조선일보 특파원의 질문은 “북핵 해결을 전제로 임기 내에 이명박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는가”였다. 그러니 부시의 ‘노’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나는 것’에 대한 ‘노’라는 그의 지적이 문법상이나 어법상 타당할 것 같다. 그는 이런 지적에 덧붙여, “이 얘기를 뒤집으면, (이명박과 함께가 아닌) 단독으로라면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고, 현재 북·미 관계 역시 그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은 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는 안 만나겠다고, 그렇게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을까.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한·미 관계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할 정도로 좋아졌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부시 대통령 본인이었다. 그러니, 혹시 앞으로 평양에 갈 일이 생길 경우,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그랬듯이 이 대통령 ‘손을 꼭 잡고’ 같이 가면 참으로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부시의 'NO'는 3자 회동에 대한 거부

그러나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그의 결연한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이 문제’에 관한 한, 대단히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6년 11월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 나와 당신과 김정일이 함께 만나 평화조약에 서명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인심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그 뒤로도 선명하게 밝혀진 바 없지만, 그 한마디로 그는 1년 내내, ‘평화협정’에 필이 꽂힌 노무현 대통령에게 시달렸다. 급기야는 1년 뒤인 2007년 9월 시드니 아펙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을 다시 만났을 때, 기자들 앞에서 노 대통령이 마치 1년 전의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을 가하듯 하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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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이 사건 이후 워싱턴은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 남은 기간에 절대로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할 만큼 분개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그런데 한국의 특파원이 ‘한국 대통령과 함께 김정일을 같이 만나는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으니,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마치 어제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또다시 그런 약속을 했다가 이명박 대통령마저 노무현 대통령처럼 약속을 지키라고 달려들면 곤란할 것이므로, 더욱 단호하게 아예그 싹을 잘라버릴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이 문제를 부시 개인의 경험에서 오는 반응으로만 치부할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지나치게 희화화할 위험성이 있다. 2006년 하노이 회담에서 부시가 분명히 “같이 만나서 평화조약을 체결하자”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므로, 지금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이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동북아 정책 바뀌면서 대북 정책도 변화

노무현 정권 후반기 미국의 대북·대한반도 정책은 ‘6자 회담과 북·미 평화협정의 동시 병행’으로 요약된다. 2006년 5월 라이스 국무장관 보좌관인 필립 젤리코 미국 국무부 심의관이 작성한 <젤리코 보고서>에서 시작된 미국의 이 과감한 접근(브로드 콘셉트) 전략은, 그 전해 9·19 공동성명에서 싹을 틔운 북·미 평화협정과 수교, 그리고 6자 회담의 동북아 다자안보기구로의 발전을 축으로 하는 부시 2기 대한반도·동북아 전략을 구체화하고 정식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7년 하반기부터 미국의 정책은 또 한번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틀을 벗어나 준군사동맹 관계로 발전해가는 외적 환경에서, 한국의 친미 보수정권 등장이라는 내적 조건의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즉, 6자 회담을 발전시켜 동북아 다자안보기구로 가고자 할 때는 북·미 관계 역시 평화협정을 거쳐 수교로 나아가는 게 필요했지만,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그것을 축으로 아태 지역에 새로운 안보협의체를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는 시대로 접어들 경우, 이는 자칫하면 새로운 구상과 충돌할 수 있다. 북한과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남한에 대해서는 방위비 증액, 최신무기 구매, MD·PSI 가입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북 전략 자체도 ‘평화’를 앞세우는 대신 북·미 쌍방의 실용주의적 이익을 강조하는 쪽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북·미 양국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존의 연락사무소 대신 외교대표부를 워싱턴과 평양에 둘 것이라고 했다가 최근에는 외교대표부 대신 ‘이익대표부’로 이름이 바뀐 것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한국은 아태지역 안보협의체의 전위국가로 설정해가는 한편, 북한과는 쌍방의 이익을 앞세운 실리적 관계로 나아가는 ‘미국판 실용 외교’ 또는 ‘두 개의 한국 정책’이 부시의 ‘노’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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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7:55

주변국의 ‘복수’가 두렵다


지난 몇 달간 미국만을 믿고 북한·중국·러시아 등 인접 국가를 홀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를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미국도 버팀목 노릇을 해주지 않을 게 뻔한 상황에서, 이들의 반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32호] 2008년 04월 21일 (월) 11:17:28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참여정부 초기에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필자에게 한 말이 있다. 정부 출범 이후 외교안보 분야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마치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 같더라”라는 것이었다. 주로 미국과의 안보 현안으로 눈코 뜰 새 없던 당시 심경을 표현한 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외교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이번 미국 방문을 지켜보며, 또다시 외교안보 분야에 위기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을 갖게 된다. 믿어 의심치 않았을 법한 미국과의 관계조차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국익을 둘러싼 냉혹한 이해타산뿐이라는 점이 확인된 마당이다. 이제, 미국 방문 결과가 나오기를 북한·중국·러시아 등, 이 정권에 응어리진 국가가 눈을 부라리며 지켜보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후환이 두려울 뿐이다.

사실 이번 방미는 초장부터 북한과의 숨막히는 외교전이었다. 3월13일 제네바 북·미 회담 때까지만 해도 미국에 큰소리를 치며 애를 태운 북한이 3월18일 뉴욕 채널로 한 걸음 진전된 안을 흘리며 싱가포르 회동을 제의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남한이 없는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대미 양보 카드를 꺼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4·8 싱가포르 합의를 계기로 북한은 더 이상 미국이 남한만의 전유물이 아니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믿기 어렵고 적은 많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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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업무보고에서 직원과 인사를 나누는 이명박 대통령(가운데).

그 다음 북한의 순서는 무엇일까. 우선은 지켜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다녀오고 난 뒤 어떻게 하는지. 물론 이 정부와 대통령이 거듭 얘기하는 것처럼 식량·비료를 지원해달라고 먼저 얘기하는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 오히려 반대로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 시나리오가 매우 현실감 있게 거론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얘기가 계속 떠돈다. 구체적으로 5월 초라는 시기도 거론된다. 요즘 북한은 티베트 사태며 타이완 문제며 중국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박수부대’ 노릇을 톡톡히 한다. 한동안 중국에 자존심을 세우며 민족주의 태도를 유지하려 애쓰던 때도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심경을 가눌 수 없다. 저 사람들이 저러면서 속으로 얼마나 칼을 갈까,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칼을 가는 게 북한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지난해 12월19일부터 정권 주변 사람이 무책임하게 내뱉은 말의 파편들을 떠올려보라. 누구는 더러 심장을 맞고 누구는 더러 마음을 다치고, 그 말 하나하나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지금 벼른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돈다. 중국은 한마디로 당신들이 친미만 해서 잘살게 되는지 보겠다는 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새로 중국 대사로 임명된 신정승 전 뉴질랜드 대사에 대해 중국 측이 격이 안 맞는다며 불만이 많다고 한다. 5월 초 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손에 땀이 난다.

러시아와는 한마디로 그놈의 자원 외교 때문에 망했다. 러시아가 한갓 자원외교 대상에 불과하냐며, 지난해부터 모스크바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실용주의를 얘기하면서, 러시아가 친미 국가에는 자원을 팔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모르는가 보다.

한마디로 무례하고 오만불손하다는 것이다. 미국만이 내 친구라며 그동안 너무 떠들어댔다. 지난 몇 달간 오직 말로써 주변을 전부 적으로 만들어놓았다. 믿었던 미국도 이제 무작정 기대기 어려운데, 그 ‘적’들의 반격을 앞으로 어찌 감당할 건가. 이게 위기가 아니고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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