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6 14:42

아베는 왜 한국을 어리석다 했나


이노키 의원은 무단 방북을 통해 새로운 의제를 던졌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기계·화학 공단을 북한에 옮기는 ‘원산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아베는 지금 자신만만하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323호] 승인 2013.11.26  09:03:01

Pin It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을 ‘어리석은 국가’라고 평했다는 <주간문춘> 보도로 부글부글 끓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베는 중국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나라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게임이 가능한 반면 한국은 그냥 어리석은 국가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의 측근이란 자들은 한술 더 떠 ‘새로운 차원의 정한론(征韓論)’을 들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이 일본 대기업들에게 강제징용 배상금을 청구하면 일본은 금융 공격으로 한국 기업 및 경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신(新)정한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征明假道 : 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의 길을 빌린다)를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한 게 첫 번째 정한론에 바탕을 두었다면, 청일전쟁을 앞둔 19세기 말 일본에서는 두 번째 정한론이 횡행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이란 수식어를 달고 세 번째 정한론이 등장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또다시 중·일 간 분쟁이 놓여 있다. 지금 중·일 관계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제3차 청일전쟁(중일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그리고 지난 몇 백년간 두 나라는 정면충돌을 앞둔 시기에 그 틈바구니에 낀 한반도를 먹잇감으로 사전 격돌을 벌이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아베의 측근들이 한국의 급소로 금융 부문을 거론했다는데, 사실은 금융만이 한국의 급소는 아니다. 영토적인 관점에서는 독도 역시 급소다. 또한 독도를 염두에 둘 경우 최대의 급소가 바로 북한이다. 이에 따라 지난 1년간 아베 정권은 북한을 장악하기 위해 숨 가쁘게 움직여왔다. 그 결과 이젠 한국에게 ‘어리석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요즘 한국의 상황은, 임진왜란 직전 율곡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국내는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친일·친러·친중으로 나뉘어 골육상쟁을 벌이던 구한말과 다를 바 없는 정세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사진합성:시사IN 양한모</font></div>김정은 북한노동당 제1비서(왼쪽)와 아베 일본 총리.  

ⓒ사진합성:시사IN 양한모

김정은 북한노동당 제1비서(왼쪽)와 아베 일본 총리.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의 전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 의원의 수수께끼 같은 행적을 들여다보자.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18년 만에 일본 유신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한 이노키가 최근 돌연 무단 방북을 결행하는 바람에 일본이 온통 시끄럽다. 이노키가 방북한 11월2~7일은 일본 참의원 회기 중이었다. 참의원 규정에 따르면, 회기 내에 허가 없이 해외에 나갈 수 없다. 


그가 이 같은 무리수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이노키는 무려 17회나 북한을 방문했다. 최근의 방북 기록은, 지난해 4월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 행사와 북한의 7·27 전승절 기념일 때다. 한마디로 이노키는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제 집 드나들듯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이노키는 북한에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참의원 규정까지 어겨가며 무단 방북을 단행했다. 더욱이 방북 기간의 공개된 일정을 살펴보면 특별한 일이 없다. 고작 이노키 자신이 이사장인 비영리 법인 ‘체육평화교류협회’의 평양사무소 개설에 합의한 정도다. 그리고 11월6일에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스포츠 교류와 납치 문제 등 북·일 간 현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 정도 일정 때문에 그토록 수선을 떨며 방북했단 말인가?


그런데 차분히 살펴보면, 이노키가 방북을 감행해야 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바로 국내 일부 언론이 보도한 ‘김정은 제1비서의 12월 방중설’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북·중 양국은 김정은이 오는 12월 비행기로 방중하며 인민대회당 앞에서 중국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 절차까지 협의를 마쳤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북·중의 협의 기간과 이노키의 방북 기간이 겹친다는 것이다.


북한 김형중 외무성 부상이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김정은 방중을 협의한 기간은 10월29일~11월2일이다. 이 협의가 끝난 11월2일에 이노키는 부랴부랴 평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1월4일에는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북해 김정은 방중에 대한 두 번째 협의를 개시했다. 이 협의는 8일 끝났는데, 그 전날인 7일까지 이노키는 평양에 머물렀다. 당시 이노키가 접촉한 라인이 바로 일본의 대북 채널인 노동당 국제부 인사들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었다. 이노키가 원했다면, 북·중 간에 오가는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는 통로다.


일본의 대북 안테나 이노키 의원


한국에서는 아직 안토니오 이노키라는 인물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이노키는 단순한 체육계 인사 혹은 정치인이 아니다. 1960년대 역도산의 제자로 프로 레슬링계에 데뷔한 이노키는 그 인연 덕분에 역도산계 인물들이 중요 지위에서 활동 중인 북한 체육계에 ‘대화 창구’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역도산의 사위이자 지난해 1월 체육상 자리에서 물러난 박명철이다. 박명철은 한때 김정일 위원장의 의형제로 불렸다. 이른바 ‘장성택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그리고 장성택은 대일 접촉 창구인 노동당 국제부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이노키는 북한의 상층부 동향 파악을 위한 일본 핵심 라인의 안테나 구실을 해왔던 셈이다. 미국이 농구 스타인 데니스 로드먼을 앞세워 김정은 제1비서와 접촉하고 있다면, 일본의 이노키는 예전부터 같은 구실을 담당해왔다.


한편 일본은 이미 지난 5월부터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 참여’를 북한으로 보내 아베 방북과 북·일 정상회담을 타진해왔다. 그런데 이토록 공을 들인 북한이 지난여름 이후 중국과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결코  못 본 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중대 사안에 비하면 이노키가 방북 때문에 참의원 규정을 어긴 정도는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노키 방북의 첫 번째 목적이 북·중 정상회담에 대한 동향 파악 및 정보 수집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지난 5월의 이지마 이사오 방북 이래 일본은 7월 참의원 선거 직후라면 언제라도 아베 총리가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7월에는 이지마를 대신한 아베의 측근이 베이징에서 북한 측과 접촉해 아베의 8월 말~9월 초 방북을 협의한 정황도 있다. 일본의 이 같은 발 빠르고 적극적인 대북 공세는 중국을 바짝 긴장시켰다. 더욱이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지난 5월 말 방중해서 ‘중국이 9월 말까지 북·미 회담(6자회담 포함)의 물꼬를 열지 못할 경우, 북한은 독자적인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한 일도 있었다.(<시사IN> 제307호, ‘아베의 방북이 다가온다’). 


이후 중국의 급박한 움직임은, ‘아베가 시진핑보다 먼저 김정은을 만나서는 안 된다’는 강박적 경쟁 심리를 빼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중국은 아베의 방북 가능성에 맞서 혼신을 다한 6자회담 추진으로 맞불을 놓았다. 중국 국방장관에 이어 리커창 총리, 시진핑 주석까지 총동원되어 6자회담을 밀어붙였던 것이다. 그 뒤에는 ‘아베 방북’이란 카드로 중국을 압박한 북한이 있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의원(왼쪽)이 11월6일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과 만났다.  

ⓒ연합뉴스

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의원(왼쪽)이 11월6일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과 만났다. 중국은 이런 움직임 끝에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북한의 전략 사령탑인 당 중앙위로서는 중국의 노력에 대한 의리 때문에라도 ‘아베를 김정은과 먼저 만나게 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이 최근 시점에서 ‘김정은의 12월 방중설’을 흘린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 대한 압박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미국은 6자회담을 할지 말지 11월 말까지 답하라. 그때까지 답이 없으면 중국은 6자회담 파탄의 책임이 미국에 있음을 통고하고 독자 노선을 걷겠다.’


즉,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보란 듯이 북·중 관계 강화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중·러 관계를 축으로 한 최근의 유라시아 역관계 재편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이미 일본의 국제관계 전문가들조차 유라시아 대륙의 판세가 중·러가 주축인 상하이 협력기구(SCO)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간다는 점을 인정한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인도 등 친미 국가들도 속속 SCO로 쏠리고 있다.


한반도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동북 연선으로 남하하며 거점을 만들고 있다. 중국의 나진선봉 진출 및 나진항 4·5·6호 부두 개발, 러시아의 하산-나진항 철도 연결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방중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 역시 이 흐름의 외연으로 보는 시각이 제기된다. 이런 상황이 심화되면, 대한민국 역시 ‘한·미·일 동맹에 그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조성되는 유라시아 세력권으로 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시점에서 아베의 방북을 추진해온 일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니 이노키 방북의 목적은 정보 수집 정도가 아니다. 아베의 방북 시점을 재타진하는 한편 북·일 관계와 관련한 새로운 의제를 던졌을 가능성이 크다. 


아베의 카드, ‘원산 프로젝트’


사실 일본은 아베가 시진핑 다음에 김정은을 만난다 해도 느긋할 수 있는 처지다. 회심의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회심의 한 수’는 바로 ‘300억 달러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 북·일 수교 배상금이다. 


지난 5월 이지마 방북 당시에는 일본 전자산업이 북한의 남포공단으로 진출하는 프로젝트가 흘러나온 바 있다. 즉, 아베가 방북할 경우 납치된 일본인들을 데려가는 대신 수교 배상금 가운데 30억 달러(당시 20억 달러로 보도되었으나 이후 추가 확인 결과 30억 달러로 알려짐)를 먼저 북한에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리면 북한은 이 돈으로 일본 전자산업계가 활용할 공단을 남포에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일본의 장기 계획에서 일단에 불과하다. 몸통은 따로 있다.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몸통은 일본의 원산 진출이다. 300억 달러 이상의 수교 배상금을 투입해 일본의 노후화된 기계공단 및 석유화학공단 시설 중 일부를 원산에 통째로 옮긴다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김정은 제1비서 등 북한 지도부가 11월3일 마식령 스키장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제1비서 등 북한 지도부가 11월3일 마식령 스키장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기자는 1996년 7월 김정우 당시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의 13박14일에 걸친 일본 방문을 추적해, 북·일 간 비밀리에 협의되던 가시마 공단 이전계획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 계획은 일본의 수교 배상금으로 도쿄 인근 이바라키 현에 있는 가시마 공단의 기계공단과 석유화학 공단을 나진선봉 우암공단 내 동번포·서번포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해 9월 나진선봉에서 열린 투자설명회에서 미쓰이 그룹 계열의 도요엔지니어링 사가 가시마 공단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우암공단 설계도면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때 그 계획이 지금 동해 연선을 타고 밑으로 내려와 원산에서 다시 시작되려 하는 것이다.


도쿄에서 80㎞ 떨어진 가시마 공단은 일본의 대표적인 임해공업단지다. 1960년대 일본 경제가 기계공업 위주에서 중화학공업으로 고도화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던 공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시마 공단은 수도 인근의 대표적 사양산업 및 공해산업 밀집지로 전락한다. 따라서 1996년, 북한 우암공단으로의 이전 계획은 수교 배상금을 미끼로 한 공해산업의 방출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2020년대까지 내다보는 아베 정권의 제3차 한반도 진출 계획으로 부활한 것이다. <주간문춘>에서 언급한 ‘새로운 차원의 정한론’의 출발점이라 일컬을 만하다. 


지정학적으로도 일본의 원산 진출은 최근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한반도 동북쪽의 나진항을 거점으로 이루어질 중국과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는 기지로 원산만 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남북협력을 차단해 한국을 고립시켜 포위하겠다는 의도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중국·러시아의 남하를 원산에서 저지


일본은 지금 중국과의 센카쿠 분쟁 및 한국과의 독도 분쟁에서 제한적인 국지전을 상정한 시뮬레이션을 거듭하고 있다. 독도에 국한해 보자면 지난해 말 이후 일본 군사 관련 매체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다케시마 탈환작전(竹島奪還作戰)’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지난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 전쟁을 모델로 한·일 양국의 해·공군 전력 및 작전이 면밀히 검토된다. 이에 대비한 자위대의 해병대화 및 도서 방위를 위한 수륙양륙함 도입 등도 치밀하게 준비되고 있다.


시뮬레이션 결과 해군력이나 공군력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게 그들의 결론이다. 그런데 일본 처지에서 한 가지 찜찜한 대목이 있다. 바로 북한이다.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이 독도에 접근할 때 과연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미지수인 것이다. 그렇다면 ‘원산 프로젝트’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일본이 막대한 자금으로 북한 지도부를 사전 매수해서 배후의 적을 제거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면 무리한 상상일까.


마침 지난해 말 이후 김정은 제1비서는 원산개발과 마식령 스키장 개발을 자신의 첫 번째 치적으로 삼겠다는 행보를 보여왔다. 더욱이 장성택 역시 자신의 고향인 원산에 진출할 일본 자본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김정은 등장 이후 중국 방문에 실패한 데다 지난 3월에는 가택연금까지 당하는 수모 끝에 겨우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이라는 체면치레용 지위에 머무르는 장성택에게 원산 프로젝트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아베 처지에서는 ‘고(Go)’ 사인만 남은 셈이다. 한국에 대해 ‘어리석다’라는 멘트를 날릴 정도의 자신감이 과연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지, 이제 이해가 되시는지! 

ⓒ 시사인(http://www.sisainliv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ㅣ저작권문의


Trackback 0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