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7 03:52

쇠고기 재협상 해주고 재고무기 땡 처리?


쇠고기 재협상 해주고 재고무기 땡 처리?

성난 민심은 이미 쇠고기를 넘어 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87년 6.29의 향수를 그리워 하나 봅니다. 한국과 미국이 이미 이면 교섭을 끝내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일부에서는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일부가 교체되는 시점에 쇠고기 재협상 카드가 전격 등장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이 재협상에 응할 리 없다고요?
최근 주목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한·미 양국 사이에 주로 미제 재고무기 판매와 관련한 협상이 갑자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중 하나가 공격용 아파치 헬기 도입 문제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미제 중고 헬기 도입과 한국형 헬기 개발로 의견이 분분하던 이 문제가 지난 5월 말 갑자기 미제 헬기 36대 (약 9천억원) 구입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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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비슷한 시점에 아파치 헬기 보다 규모가 더 큰 미제 재고무기 관련 협상이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5월21일부터 23일까지 열린 WRSA(전시비축탄약) 관련 제5차 회의입니다. WRSA(전시비축탄약)란 미군이 지난 70년대와 80년대 미국에서 저장공간을 초과하거나 도태된 탄약을 한국에 들여와 유사시 대비용으로 비축 관리해온 탄약들로,  약 5조원대에 이릅니다. 미국은 지난 2000년부터 우리 정부에 이를 구매할 것을 종용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군 전력 증강과는 무관한 쓰레기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시민단체들 입장과 선별 구매할 경우 무기로서 가치가 있다는 국방부 입장이 엇갈렸는데, 이번 5차회의를 계기로 선별 구매하기로 결론이 모아졌다는군요. 어느 정도 규모가 될지 금액은 나오지 않았는데 전체 5조원 대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일 것입니다.

갑자기 왜 미제 무기 구매 문제를 장황하게 늘어놓느냐구요?
미국이 쇠고기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의 분석에는 미국내 축산자본의 막강한 로비력에 대한 평가가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회에서 축산자본의 힘을 찍어 누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바로 군수산업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전개되는 초불시위는 축산 자본 뿐 아니라 군수산업의 이해관계와도 직결돼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4월 이명박 대통령 방미 이후, 7월 부시 대통령 방한이 이뤄지기 전까지, 군수산업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많은 현안이 산적해 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재고무기 판매처럼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관철시키지 못한 많은 군수 관련 요구 사항을 이 기간에 몰빵을 하려고 해왔는데 자칫 촛불시위 때문에 불안하기 그지 없게 된 것이지요. 지금은 시민의 저항이 반 이명박에 머무르고 있지만, 반미로 확대될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출액(1년에 약 1조)의 몇 배를 능가하는 군수산업의 무기 판매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한국 시민의 저항 운동이 반미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한편, 재고무기 판매라는 군수산업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미국도 쇠고기 문제를 적절한 선에서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미국이 경우에 따라서는, 민간 자율규제 수준을 넘어, 쇠고기 협상안의 부칙 조항에 예외항목을 두어서라도 30개월 이상 수출을 금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워싱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한·미 양국이 이미 지난 5월 중순 이후부터 쇠고기 재협상과 자동차 및 무기 수입 확대를 패키지로 한 물밑 대화를 진행했고, 이미 가닥이 잡혔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6월3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갑자기 등장해 미국 측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을 ‘용감하게’ 요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전혀 다르게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들여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얘기할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못 느끼셨나요?

오비이락 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점이 바로 한국이 미제 중고 아파치 헬기 구매와 WRSA 선별 구매를 결정하고 난 직후라는 점에서 상관 관계를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그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요.
군수 관련 현안이 이것 말고도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줄줄이 늘어섰다는 점에서 아득한 생각이 듭니다. 쇠고기 재협상을 통해 30개월 이상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알량한 양보 하나 받아내면 끝일까요. 그러고 난 뒤 또 얼마나 많은 우리의 혈세가 알게 모르게 미제 중고 무기와 고철 덩어리 수입을 위해 빠져나가야 할까요? 
 

<시사IN> 남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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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7:56

부시는 김정일을 만나지 않는다고?


부시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기자회견 때 김정일을 만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 거부가 아니다. 남.북.미 3국 평화협정에 대한 거부이다. 즉 '남한 따로, 북한 따로' 상대하겠다는 뜻이다.
[33호] 2008년 04월 28일 (월) 10:52:35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연합뉴스
미국 시각 4월19일 오전 워싱턴에 있는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부시 대통령.

한국 시간 4월20일 새벽 2시께. 미국 대통령 별장인 워싱턴의 캠프 데이비드에서는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질의 응답이 벌어졌다. 한·미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이 “임기 중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느냐”라는 한국 특파원 질문에 매우 단호한 태도로 “노(No)” 한 것이다.

‘노’라고 할 때, 그의 표정이 얼마나 결연했던지 졸음을 참으며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내내, 뇌리에 깊이 각인될 지경이었다. 당연히 부시의 이 한마디는 다음 날 국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부시 대통령, 임기 중 김정일 만날 의사 없어” 대략 이런 종류의 기사가 도배를 했고 이 질문의 주인공인 조선일보 특파원 역시 같은 요지로 기사를 썼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워싱턴 전문가들은 이를, 기자들의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치부한다. 즉 부시가 ‘노’라고 한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인데 기자들이 오해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문제의 조선일보 특파원 질문은 김정일을 만날 생각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은 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날 생각이 있느냐를 물은 것이었다”라고 하면서, “부시 대통령 대답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라고 밝혔다. 그의 지적대로 조선일보 특파원의 질문은 “북핵 해결을 전제로 임기 내에 이명박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는가”였다. 그러니 부시의 ‘노’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나는 것’에 대한 ‘노’라는 그의 지적이 문법상이나 어법상 타당할 것 같다. 그는 이런 지적에 덧붙여, “이 얘기를 뒤집으면, (이명박과 함께가 아닌) 단독으로라면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고, 현재 북·미 관계 역시 그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은 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는 안 만나겠다고, 그렇게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을까.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한·미 관계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할 정도로 좋아졌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부시 대통령 본인이었다. 그러니, 혹시 앞으로 평양에 갈 일이 생길 경우,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그랬듯이 이 대통령 ‘손을 꼭 잡고’ 같이 가면 참으로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부시의 'NO'는 3자 회동에 대한 거부

그러나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그의 결연한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이 문제’에 관한 한, 대단히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6년 11월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 나와 당신과 김정일이 함께 만나 평화조약에 서명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인심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그 뒤로도 선명하게 밝혀진 바 없지만, 그 한마디로 그는 1년 내내, ‘평화협정’에 필이 꽂힌 노무현 대통령에게 시달렸다. 급기야는 1년 뒤인 2007년 9월 시드니 아펙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을 다시 만났을 때, 기자들 앞에서 노 대통령이 마치 1년 전의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을 가하듯 하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 사건 이후 워싱턴은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 남은 기간에 절대로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할 만큼 분개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그런데 한국의 특파원이 ‘한국 대통령과 함께 김정일을 같이 만나는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으니,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마치 어제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또다시 그런 약속을 했다가 이명박 대통령마저 노무현 대통령처럼 약속을 지키라고 달려들면 곤란할 것이므로, 더욱 단호하게 아예그 싹을 잘라버릴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이 문제를 부시 개인의 경험에서 오는 반응으로만 치부할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지나치게 희화화할 위험성이 있다. 2006년 하노이 회담에서 부시가 분명히 “같이 만나서 평화조약을 체결하자”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므로, 지금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이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동북아 정책 바뀌면서 대북 정책도 변화

노무현 정권 후반기 미국의 대북·대한반도 정책은 ‘6자 회담과 북·미 평화협정의 동시 병행’으로 요약된다. 2006년 5월 라이스 국무장관 보좌관인 필립 젤리코 미국 국무부 심의관이 작성한 <젤리코 보고서>에서 시작된 미국의 이 과감한 접근(브로드 콘셉트) 전략은, 그 전해 9·19 공동성명에서 싹을 틔운 북·미 평화협정과 수교, 그리고 6자 회담의 동북아 다자안보기구로의 발전을 축으로 하는 부시 2기 대한반도·동북아 전략을 구체화하고 정식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7년 하반기부터 미국의 정책은 또 한번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틀을 벗어나 준군사동맹 관계로 발전해가는 외적 환경에서, 한국의 친미 보수정권 등장이라는 내적 조건의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즉, 6자 회담을 발전시켜 동북아 다자안보기구로 가고자 할 때는 북·미 관계 역시 평화협정을 거쳐 수교로 나아가는 게 필요했지만,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그것을 축으로 아태 지역에 새로운 안보협의체를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는 시대로 접어들 경우, 이는 자칫하면 새로운 구상과 충돌할 수 있다. 북한과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남한에 대해서는 방위비 증액, 최신무기 구매, MD·PSI 가입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북 전략 자체도 ‘평화’를 앞세우는 대신 북·미 쌍방의 실용주의적 이익을 강조하는 쪽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북·미 양국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존의 연락사무소 대신 외교대표부를 워싱턴과 평양에 둘 것이라고 했다가 최근에는 외교대표부 대신 ‘이익대표부’로 이름이 바뀐 것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한국은 아태지역 안보협의체의 전위국가로 설정해가는 한편, 북한과는 쌍방의 이익을 앞세운 실리적 관계로 나아가는 ‘미국판 실용 외교’ 또는 ‘두 개의 한국 정책’이 부시의 ‘노’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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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7:54

'북·미 공조'에 빛바랜 이명박 방미 효과


5월 말 라이스 방북, 이익대표부 개설, 7월 초 부시 대통령 방북이라는 북한-미국 간 싱가포르 합의 내용을 모른 채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 방미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32호] 2008년 04월 21일 (월) 11:31:43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연합뉴스
미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뉴욕을 떠나 워싱턴으로 향하면서 환송 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4월 말부터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 시작, 5월 말 라이스 장관 방북 및 북한과 준 대사급 이익대표부 개설 합의, 7월 초 부시 대통령 방북, 북·미 관계 정상화.’ 지난 4월8일 싱가포르 합의를 계기로 북한과 미국이 비밀리에 그려온 북·미 관계 정상화 스케줄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끝나는 4월 말부터 미국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를 시작해 5월까지 완료한다. 그 뒤 라이스 장관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연락사무소보다 격이 높은 이익대표부 개설에 합의하고, 마지막으로 부시 대통령이 7월 초 서울을 거쳐, 평양에 들어간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의 막이 오르는 것이다. 핵 신고 문제로만 좁혀졌던 4·8 싱가포르 북·미 합의 이면에는 북·미 간 이같은 엄청난 그림이 숨겨져 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방미 전략을 수립한 것 같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전 이 사실을 알았다면,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통하는 ‘통미봉남’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식의 4월13일 발언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방미 중 워싱턴에서 갑자기 북한 측에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자는, 지금까지와 전혀 앞뒤 맥락이 맞지 않은 제안을 한 것을 보면, 워싱턴에 도착해서야 미국으로부터 북·미 관계 스케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부랴부랴 이런 설익은 제안을 내놓은 게 아닌가 싶다. 정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4·8 싱가포르 합의 문건을 정부가 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이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만 떼어내어 설명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북·미 관계의 폭과 깊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이해 부족은 결국 이번 대통령 방미 협상의 실패로 이어졌다.

‘4·8 합의’ 인정으로 맥빠진 북핵 공조

지난 4월15일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이 ‘부시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에 동의했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그렇게 믿는다, 예.(I believe so. Yes.)”라고 대답한 순간,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김이 새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가 설정한 방미 목적 4가지, 즉 한·미 동맹 복원, 북핵 공조, FTA 동력 점화, 경제협력 중 성과를 기대할 만한 것은 ‘북핵 공조’밖에 없었는데, 이마저 김이 새버렸다. 지난 4월19일자 <시사IN> 제31호에서 워싱턴의 중요한 정보 소스를 인용해, 4·8 합의 직후 청와대 측이 미국에 “싱가포르 합의 발표를 이명박 대통령 방미까지 미뤄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이후, 추가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당시 청와대 요구에 대한 미국 측 협조는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힐 차관보의 갑작스러운 말 바꾸기, 4월12일 라이스 장관의 우정 출연. 여기에 ‘미국 의회의 반발과 부시 대통령의 격분’을 주로 보수 언론의 한국 특파원들에게 ‘눈에 본 듯이’ 전한 익명의 소식통까지. 청와대로서는 짧은 순간이나마 ‘한·미 공조’를 만끽하기에 족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이 ‘짠’ 하고 워싱턴에 등장해 북한과 합의를 인정하도록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기만 하면, 스타로 떠오를 판이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해 힐 차관보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그렇게 되도록 뒷짐 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4월9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 중이던 토니 남궁 씨(뉴멕시코 주지사 리처드슨 상원의원 고문)를 붙들고, 북한이 노발대발했다. “도대체 뭐냐. 합의를 깨자는 거냐.” 미국 정부와 깊은 채널이 있는 토니 남궁 씨가 워싱턴에 긴급 타전, 놀란 워싱턴이 부랴부랴 기자 질문에 답하는 군색한 형식으로 부시 대통령이 이미 4·8 합의를 승인했다는 사실을 실토해버림으로써 1주일에 걸친 손님맞이용 연출극은 막을 내렸고, 북핵 공조라는 대통령 방미 1순위 목표 역시 허공으로 사라졌다.

워싱턴이 북한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청와대 의 무리한 요구에 귀를 기울였던 것은 이 대통령에게 요구할 건 많은데 선물로 줄 게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전 한·미 간 협상 결과 역시 알짜는 미국이 챙기고 한국은 잔뜩 부담만 짊어지는 것이었다. 쇠고기 시장 개방을 둘러싼 협상에서 한국은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30개월 이상 수입 금지라는 기존의 연령 제한을 폐지해, 전국민을 광우병 위험에 노출시켰다. 이 대통령이 그나마 성과라고 얘기할 만한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양해각서(MOU) 체결도 따지고 보면 이미 노무현 정부 때 2008년 말까지 시행하기로 합의했던 사항이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실 문제 투성이다. 비자 면제를 받는 대가로 미국에 전국민의 전과사실 조회자료(Criminal Report)를 제공해야 한다.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국내법과도 충돌하고 인권 침해 논란도 제기된 상태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11억80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했다고 언론이 대서특필했으나, 그 중 10억 달러에 이르는 프롤로지스 사의 경기도 일대 물류단지 투자 건은 사실 노무현 정권 때인 지난해 말 MOU 체결이 이뤄졌다.

 미국의 ‘동맹 복원’ 요구에 시달린 이 대통령

따지고 보면 뭐를 성과라고 해야 할지 모호하다. 반면 군사안보 분야에서 이른바 한·미 동맹 복원을 명분으로 미국이 이번에 관철하고자 하는 쇼핑 리스트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대북 퍼주기를 능가하는 대미 퍼주기 소리가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4월12일자 <시사IN> 제30호에서 밝힌 ‘한·미 동맹 6단계 로드맵’은 사실 미국이 가지고 있었던 이면의 구상이다. 그 내용이 알려진 뒤 미국은 마치 자기 페이스를 잃은 것처럼,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요구 사항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즉 범태평양안보협의체(PAPSU) 결성 △MD PSI 가입 △첨단무기 구입 △방위비 증액과 기지 이전비 부담 △전시작전통제권 재협의 등 기존 6단계 로드맵에 있는 내용 외에도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이란 제재 동참 등, 이 대통령과 정부 부처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사실 이 대통령이 생각한 한·미 동맹 복원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한다. 적당히 생색 내주고, 미국으로부터 경제 살리기 도움을 얻고자 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선수를 쳐버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무척 당황했다”라고 정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가 지적한 대로, 이번 방미는 사실 대단히 부담스러운 여행이었다. 그래서 미국 방문 직전 청와대는 나름으로 대책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번에는 한·미 동맹 복원 내지, 21세기 전략동맹의 개념만 정리하고, 미국 요구와 관련한 세부 논의는 ‘지속적인 실무 협의’로 넘겨, 7월 부시 대통령 방한 때 결론을 낸다는 것이었다.

   
ⓒ연합뉴스
4월15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만찬에서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
그러나 이것은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은 대책이었다. 한국 정부는 아마도 부시 대통령이 8월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참석 일정에도 불구하고 7월 초 서울에 오겠다고 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부시 대통령의 7월 서울 방문은 서울이 목적이 아니라 4·8 싱가포르 북·미 합의에 따라 평양 방문이었다. 따라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기 싫어하는 부시 대통령이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앞두고 서울과 골치 아픈 협상을 전개한다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따지면 미국도 이번 이명박 대통령 방미 때가 아니면 자기 요구를 관철해낼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워싱턴의 정보 소스들은 이 대통령 방미 전부터 “미국이 이번에 모든 요구를 다 제기할 것이고, 반드시 한국의 답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라고 경고해왔다. 그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번 미국 방문은 대단히 힘든 여행이 될 것이다”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미 동맹 복원을 소리 높여 외쳐온 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다. 미국이 ‘한·미 동맹을 복원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며 요구 사항을 들이밀면 할 말이 없다. 전임 노무현 정권이 말로만 반미를 외쳤지 실제로는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는 것을 이 정부 사람들이 제대로 간파를 못한 것도 큰 실책이다. ‘노무현 정부도 아프간 파병을 했는데…’라면 거부하기 어렵게 돼 있다.

더구나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약점을 훤히 꿴다. 바로 이명박 정부에게 ‘북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부담스러워하고 한·미 동맹 훼손 운운하며 비난해온 것은 바로 이들이 북한 카드를 쥐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쥔 이상 미국은 한국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한국이 언제든 북한과 손잡고 ‘사고’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명박 정부는 한·미 동맹 복원에 몰입하느라 자신의 가장 중요한 협상 무기인 북한 카드를 헌신짝 버리듯 했다. 미국에는 김영삼 정부 이래 10년 만에 ‘봉’을 만난 기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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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7:46

한반도의 두바이를 나들섬에 세운다고?

[30호] 2008년 04월 07일 (월) 11:52:56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지난 3월18일 새만금 방조제에서 망원경으로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이명박 대통령(오른쪽).
이명박 정부에게 한·미 동맹 복원은 남북 관계를 비롯해 그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것이었다. 특히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 한 경제 살리기 역시 출발점을 한·미 동맹 복원에 걸었다고 할 만큼 한·미 동맹은 이 정부의 알파요 오메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첫 결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4월15일 뉴욕 일정부터 시작해 19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거치면 첫 계산서가 날아오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으로 보면 우리 쪽이 미국에 줘야 할 것은 매우 많은 데 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을 건지, 뚜렷하지 않다.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체와 MD·PSI 가입은 중국이나 북한 등과의 관계에서 한국의 외교 입지를 축소할 게 뻔하다. 여기에다 천문학 비용의 기지이전비와 방위분담금 증액 요청, 그리고 첨단무기 구입비 등 경제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한·미 관계를 우선하느라고 지난 10년간 순탄했던 남북 관계마저 최근 헝클어졌다. 미국이 신용평가 등급을 상향 조정해준다 해도, 남북 관계 악화로 코리안 리스크가 올라가면 그것도 말짱 도루묵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관계 복원에 착안한 것 자체를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시스템이 마비된 미국 경제 현실에서 핵심 다국적기업이 생산거점을 아시아 공업국가, 즉 중국을 제외한 한국·인도·베트남 등지로 옮길 가능성이 예견됐고, 이를 새만금이나 나들섬 구상으로 수용할 경우 두바이의 기적을 한국에서 재현하는 상상을 해볼 수는 있었다.

실제로 나들섬의 경우 모토로라, AT&T, 엑슨, 모빌, 카길, 코카콜라 등 대북 진출을 희망하는 미국의 5대 다국적기업의 대북 진출 거점으로 개발하고, 여기에 북한의 싼 노동력을 결합하면 미국과 원산지 표시 문제로 갈등을 빚는 개성공단에 대한 대안이 될 것 같아 보였다. 따라서 나들섬은 이번 미국 방문 과정에서 미국 자본 유치 메카로 깜짝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보면, 이는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나들섬은 한·미 연합사와 북한 간의 공동경비구역 안에 있어 북측이 동의하지 않는 한 삽질 하나도 불가능하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놔두고 이를 허용할 리도 만무하고 더구나 남북 관계가 악화한 최근 상황에 비춰보면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하다.

새만금에 미국 자본 끌어들이기 쉽지 않아

또한 이곳에 인공섬을 조성하면 홍수시에 북한 측 지역은 물론이고 김포나 일산 강서·마포구 일대까지 물에 잠길 위험이 있어, 반대하는 전문가가 많다. 미국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해서 좋아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어차피 되지 않을 일 생색이나 내자는 의도였을 수 있다.

새만금으로 미국 자본을 유치한다는 계획은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다가 실패한 인천 송도자유경제지대 구상의 후속편이다. 미국 금융자본 유치를 전제로 동북아 금융 허브를 꿈꾸며 깃발을 꽂았던 송도 개발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새 정부는 새만금에서 또다시 판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지난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투자를 기다리다 못해 일본으로 방향을 틀겠는가.

아무리 친미도 좋지만 모든 일은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정부에도 진짜 미국을 아는 전문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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